밤낮으로 몹시 덥다. 땅속의 유황이라도 녹일 듯 무서운 불길이다. 작열하는 태양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아롱거리는 열기의 움직임이 나를 어지럽게 한다. 올 더위는 늦게 찾아온 장마와 더불어 이상하리만치 꽤나 성질이 이악스럽다. 정상적으로 찾아오지 못한 것이라면 미안한 생각이라도 가져야 할 터인데 오히려 그 성깔이 심하다. 그 기 세가 세상을 다 가졌다는 오만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다한들, 조용히 준비하고 있는 가을의 순리에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순간일 뿐이다.

폭염만이 아니다. 매스컴을 통해 흘러나오는 국내외의 상황이 더욱 칙살맞다. 마치 에어컨 없이 달리는 자동차의 실내와 같지 않은가. 뭔가 문제가 있는 자동차에 타고 있는 내가 재수가 없는 모양이려니 하고 마른 침을 삼켜버린다. 조금만 참으면 내릴 목적지가 다가온다. 찜통더위에 서로 간의 감정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어제의 사람들은 어떻게 더위에 적응하며 살았을까. 그들은 가을 추수를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의 일터에서 소일만을 했다. 낮일은 사태 같은 한숨을 쏟으며 더위와의 싸움이었지만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희망과 성취감으로 가벼웠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위해 마당에 고시락불을 지피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자리돔을 구웠다. 자리돔은 식어가는 아궁이 불씨에 넣어 식구 수에 맞게 자리돔을 넣으면 지글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동네로 퍼져나갔다. 사람이 많지 않는 동네라 어느 집에서 자리돔을 저녁밥상에 올렸는지 알아챌 수가 있었다. 자리돔이 없는 밥상을 차려 받은 여느 집 남편의 일그러진 표정을 알아챈 아내는 얼마나 여북했을까. 정성껏 밥상 차려 놓았지만 옆집에서 나는 자리돔 냄새에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다. 옆집에 대한 미움이나 질투 같은 것은 없었던 공동체, 그 부족함을 부끄럽게 여기던 순수한 시절이었다.

일상은 또 어떤가. 논틀밭틀을 나가는 집에도 모시들이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정낭을 한 개 걸어두면 족했다. 도둑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고, 그냥 말이나 소가 마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을 뿐이다. 사람은 믿었고 사려가 없는 가축들이나 고려했던 그 시절 사람들은 선한 마음이었다. 집 안에 귀중한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의 집에는 생명과도 같은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 주택에 대한 문서나 땅 등기문서 등 생활필수품들이 가득 차 있었다. 외부의 침입으로 도난당했을 때 엄청난 재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안심하고 밭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 시절, 마당에 멍석을 깔고 고시락불의 연기를 휘휘 저으면서 먹던 저녁의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제의 사람들이 떠나간 사회는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초가삼간은 아파트로, 아궁이는 사라지고 전기밥솥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빨래 방망이는 세탁기로, 정낭은 높은 울타리와 비밀번호가 담긴 도어로 교체되었다. 그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늘의 삶이 당연시 찾아온 달콤한 손님처럼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이렇게 살지만 후손들에게 만큼은 가난을 되 물림할 수 없다는 의지와 노력으로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이루어낸 산물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어제의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제의 사람들에 대한 온정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락과 부유함의 기저에 그분들의 흘린 비지땀과 정성이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 우리는 단지 그 강물에 몸을 담고 안락함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혹여나 보도위에 아카시아 꽃이 피워낸 보람도 없이 땅에 널브러져 마치 사고를 당한 사람의 무기력한 모습처럼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다변에서 침묵, 협량에서 관용, 냉혹함에서 인자함을 견지하며 오늘의 사람들이 잘 되기만을 바라던 고마운 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