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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약자였던 여성들 인권 대변혁의 선구자 되다10. 미투운동의 함의
임청하 기자  |  purenmul@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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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2  17: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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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임청하 기자]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 및 아동들이 자신을 피해사실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도록 서로를 독려해 주고 피해자끼리 서로의 경험을 공감하며 연대해 사회를 바꿔나가는 운동이다.

처음 힘없는 소수인종 여성들의 익명으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2017년 10월 할리우드 하비와인스틴 성범죄 파문으로 세계적 여성들의 호응을 얻으며 세계 여성 인권운동의 획을 그었다.


대한민국 역시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검찰 내 권력형 성추행 폭로로 미투 운동이라는 커 다란 물결에 휩싸였다.

전방위적으로 여성들의 고백과 지지, 동참이 이어지며 지난 수십년 간 가슴속에 묻어 왔던 남성 권력자들의 만행을 잇따라 폭로하며 여성인권의 대변혁을 맞고 있다.

사실 21세기 미투운동이 전개되기까지 가부장제 등 사회제도의 고질적인면 때문에 한국 사회 내 여성의 존재는 늘 약자였다.

실제로 우리 나라 여성운동은 자신의 지위에 문제의식을 느낀 여성들로 인해 일제강점기부터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조선 최초의 여성운동단체 근우회로 1927 년 5월 서울 종로에 있는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이들 100여명이 한복을 차려입고 여성 인권이 결합된 노동운동의 성격을 띄는 선언문을 발표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오직 여성 인권이 대두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여성들이사회에서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때는 1980년대 초반이다.

당시 권위주의 체제에 대항하며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에 대해 반발하는 여성들의 단체들이 생겨났다.

한국 여성의 전화에 이어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등장했고 다양한 여성단체들은 서로 의견을 맞추면서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들로 성장했다.

198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자 군가산점 폐지 운동이 일어났다. 여성단체들은 군가산점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평등권의 문제로 인식했다.

이러한 여성들의 운동은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고 결국 군가산점제는 1999 년 헌법재판소가 위헌을 결정하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이후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다. 이어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여성들은 호주제 폐지에 대한 성과를 일궈냈다.

2005년 호주제 폐지를 중점으로 다룬 민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7년 낙태죄 폐지등을 거치면서 대대적인 여성운동은 사회대변혁의 길로 가고있다.

따라서 미투 운동은 여성이 국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세기의 세계여성인권운동이라 할 수 있다.

<본 기사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지원으로 취재,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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