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사이트에 <Gatebox>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0.3초가 채 걸리지 않는 시간에 약 60여 만 개 이상의 검색 결과를 화면에 띄워준다. 게이트박스는 일본에서 개발한 일종의 홀로그램 에이아이(AI)다. 연애와 결혼을 멀리하며 이성과의 사회적 관계에 무관심한 일종의 ‘초식남’들을 겨냥하여 개발한 것이다. 자그마한 게이트박스 안에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여성상은 일본 남성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델이며 독신남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눈다. 카메라, 인체 감지 센서, 습도 센서, 조도 센서 등을 탑재했기에 사용자의 모습을 인지하여 상호 교감한다. 이를테면 출퇴근 할 때 다정한 인사는 물론 염려, 감사, 축하 등의 문자도 수시로 주고받는다. 사용자가 돌아오기 전 조명을 켜놓거나 청소로봇 작동, 욕조의 온수를 받는 등 집안의 모든 전기 장치를 제어한다. 사용자와 AI의 대화는 반복 학습되면서 점점 진화하며 진화하는 만큼 감정도 고조될 것이다. 게이트박스와 같은 가상의 홀로그램과 인간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비약일까.

게이트박스 / 2017년 일본의 빈크루가 개발한 홀로그램 AI

가상의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는 이미 오래 전 부터 있어 왔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조각하던 조각상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경우다.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커다란 조개껍데기에 실려 키프로스 섬에 도달한다. 허나 키프로스의 수호신이 된 아프로디테를 일부 여인들이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분노한 여신은 그녀들을 몸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부도덕한 여인들의 모습에 실망을 느낀 피그말리온은 인간 여인을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을 한다. 피그말리온 왕의 특기는 조각이다. 그는 새하얀 대리석을 재료로 완벽한 여인을 만들었다. 때론 말을 걸기도 하고 때론 보석과 화려한 의복으로 치장을 하는 등 자기가 깎아 놓은 조각상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아프로디테에게 제례를 올리는 날 그는 빌었다. 나에게 이 상아빛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보내달라고...간절한 소원은 이뤄졌고 조각상에 입을 맞추는 순간 여인은 생명을 얻으며 깨어난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화가인 장 레옹 제롬은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라는 그림에서 이를 재구성해 놓았다. 머리에서 허벅지까지는 따뜻한 피가 휘도는 여인의 모습으로 허벅지 아래부터 발목까지는 아직 차가운 상아빛 대리석의 상태로 남게 하여 극적인 긴장감을 자아낸다. 키프로스의 인간 여성이라면 결점덩어리지만 생명을 부여받은 갈라테아는 그 결점에서 벗어났으며, 팜므파탈 같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피그말리온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장 레옹 제롬 /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 1890년 /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2017년 국내 ‘로봇신문’에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이 게이트박스를 개발한 일본의 스타트업 ‘빈크루(Vinclu)를 인수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라인이 빈크루 인수를 계기로 클라우드 기반의 가상 홈 로봇 개발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는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AI는 이미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인간대표인 이세돌 9단이 참패했던 참담한 심정을 우리 모두 공유하지 않았던가. 인간과 AI와의 공존은 반드시 다가올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