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기획특집탐라 九龍 이야길 따라
지명마다 제각각…용 이름 딴 마을들의 유래는 무엇일까13. 에필로그 上
장영주객원기자  |  jejupress@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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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3  18: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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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리 용마루.

 용을 일컬어 경이롭다. 신기롭다. 황홀경이다. 무아지경이다. 영물이다란 말을 한다.

 황룡, 청룡, 적룡, 백룡, 흑룡을 5대 용이라 한다면 이에 줄기가 뻗어 백흑룡, 황청룡, 어룡, 사룡, 교룡, 훼룡, 담룡, 계룡, 기룡, 이룡, 잠룡 등의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는 곳에 따라 바다용이면 해룡, 땅 용이면 지룡, 하늘용이면 천룡으로 구분이 되고, 용이 나온 묘를 ‘용묘’, 용이 승천 한 물을 ‘용연’, 용이 돌이 된 모양이 나타나는 것을 ‘용석’이라 부르고 있다.

 이번 용체가 있는 9룡 길 따라 용 스토리텔링의 연장선상에서 지명·물·산(조형물 포함) 관련을 상·중·하 3단계 나눠 업그레이드 하려 한다.

 

 제주도청 마을 홈피에서 용(룡) 자 붙은 마을을 소개하면, 용담1동, 용담2동, 용흥리, 용당리, 용수리, 용흥동으로 6개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옛 지명에서 찾은 용 마을은 4개 마을, 중엄리(용마루), 김녕리(용두동), 봉개동(웃무드내, 용강), 하도리(용목)를 찾을 수 있었다. 덧붙여 다음 검색으로 용(룡) 자 붙은 동굴은 용천동굴, 쌍용굴을 들 수 있다.

 

▲용담1동 설촌 유래

 

 옛날 삼성혈 서북 해안에 큰내(한내, 대천, 한천)가 바다에 닿는 곳(용연, 용소)에 몇몇 가구가 모여 사는 한독(대독)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용소(용연)를 중심으로 형성됐다는 의미를 살려 용담이라 칭해 오던 중 1955년 8월 13일자 법률 제368호에 의해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되자 동년 12월 13일자로 병문천 서측과 한천 동측을 용담1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용담2동 설촌 유래

 

 처음에는 ‘한독’이라 하다가 ‘용’이 사는 못이라는 뜻을 지닌 ‘용담’ 으로 개명했다. 한천과 도두동 다호부락과 용두암을 연결하는 용담2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용흥리 지명 유래

 

 1953년 자유당 정부시 지방자치제 실시로 신엄리에서 분리 용마루(龍旨) 동산의 정기를 상징하여 리명 개칭을 용흥리라 했다. 용마루는 와룡음수형이며 귀룡형이라 할 수 있다.

 

▲용당리 용못 지명 유래

 

 용당리 한복판에 약 200m 가량의 넓은 못(현재는 70m)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못이 용이 오래 전부터 살다가 개국 235년에 하늘로 승천했다고 해 못 이름(용못)을 따서 용수리라고 일컫게 되었다.

 

▲용수리 지명 유래

 

 100여 년 전부터 불리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유래는 두 갈래로 전해진다.

 첫째 현재 용당리에 있는 용못이라는 못이 있는데, 이 용못의 한자어 표기로 인하여 용수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둘째 이곳은 가뭄에도 샘물이 아주 잘 나와서 다른 마을 사람들이 숭숭물이라고 불러 왔다고 한다. 좋은 물이 많이 나는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다

 

▲서귀포시 용흥동 지명 유래

 

 용흥동은 중문면이 통합되면서 서귀포시 행정구역이 됐다. 옛 중문 강정동에 포함된 지명으로 동산 모양이 엎드려 있는 용의 모습과 흡사해 ‘복룡동산’이라고 불렀다.

 

 옛 지명에서 찾은 용 마을은 4개 마을, 동굴은 2개곳을 찾을 수 있었다.

 

▲중엄리(용마루) 지명 유래

 

 남서쪽으로는 용마루라 명명된 맥이 있어 아주 부드럽고 온순한 용이 승천의 때를 기다리는 듯이 있어 성스러운 기운이 감돌고 북쪽으로는 망망대해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용의 꿈틀거리듯 굽이쳐 달려오다가 꽃으로 장식한 듯한 기암괴석 사이를 굽이굽이 감돌아 휘몰아치는 파도가 펼쳐지는 곳이라 했다.

 

▲김녕리(용두동) 지명 유래

 

 일명 용머리등래로 입산봉에서 내백호군이 뻗쳐 내려온 마지막 끝으로 마치 용의 머리와 같이 되어 있어 동 명칭을 이렇게 지었다.

 

▲봉개동(웃무드내, 용강) 지명 유래

 

 봉개동과 아라동 사이에 위치 위치한 이 마을은 일명 ‘웃무드내’ 라고 부르는 마을로서 상무등천리, 상무등천촌 등으로 표기해 오다가 광무8년(1904)의 삼군호구가간총책에 ‘용강’ 이라 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1962년 1월 동제 실시에 따라 봉개동관할이 됐다. 웃무드내는 봉개동에 있는 용강동의 옛지명이다(마을 소개에 보면 ‘용강(龍, 용 용 崗, 산등성이 강) 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봐 산등성이가 용처럼 보인다 하여 ‘용강’이라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도리(용목) 지명 유래

 

 구좌읍에 용왕포 근방에 용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용목’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탐라순력도에 별방조점과 별방시사에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용목은 용과 관련이 있다하며 붙여진 지명으로 하도리 철새도래지와 하도해수욕장 탈의실이 있는 곳으로 용항포 근처의 지명을 말한다.

 

   
 

▲용천동굴 명칭 유래

 

 2005년 월정리 도로 전신주 설치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된 용천동굴은 2년간의 학술조사 후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일반에게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채 보존되고 있다(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학술 조사는 할 수 있다. 영상 촬영은 조심해야 한다).

 용천동굴이라는 명칭은 호수에서 딴 가칭이다. 2006년 2월 천연기념물 제466호로 지정됐다. 동굴 총연장 길이가 3∼4㎞나 되며 용암동굴이 형성된 이후 2차적으로 탄산염 동굴생성물이 자란 독특한 형태의 동굴이다. 용암동굴 내 석회종유석과 석순이 자라나 석회동굴과 용암동굴의 특성을 두루 갖고 있는 특이한 동굴이다.

 용천동굴은 규모에 있어서는 크고 웅장하며 긴 용암동굴이지만 동굴 내부에는 석회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탄산염 동굴 생성물이 가득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희귀한 동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해안가의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진 모래가 바람에 의해 동굴 위 지상에 흩뿌려졌고 이것이 다시 산성비에 녹아 동굴 안에 침투하면서 다양한 백색의 동굴 생성물을 만들었다.

 

   
 

▲쌍용굴 명칭 유래

 

 협재굴·쌍용굴·황금굴은 소천굴과 함께 1971년 9월 천연기념물 제236호로 지정됐다. (주)한림공원이 관리하고 있으며, 일반 공개는 한림공원 개발사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세 동굴이 서로 인접해 있다. 현재 협재굴과 쌍용굴은 공개되고 있지만, 황금굴은 훼손 우려가 높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반 공개가 시작된 것은 1981년 9월 협재굴이 처음이다. 1969년에 발견된 쌍용굴(두 마리 용이 동굴 내부에서 빠져 나오는 듯한 형체)은 1983년 3월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글·사진= 장영주

  (스토리텔러,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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