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임청하 기자] #태어나 처음 받아들이는 이별의 무게

신순재 ‘코딱지 할아버지’(책읽는곰, 44쪽, 1만3000원)

▲ 책 ‘코딱지 할아버지’ 표지.

할아버지와 손녀, 두 사람의 비밀 이야기가 재밌게 펼쳐지는 책이 나왔다. 신순재 작가의 ‘코딱지 할아버지’다. 저자는 여러 해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이 책을 썼다. 그는 어린 딸이 ‘할아버지와 좀더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면’이라는 아쉬움으로 책을 만들었다.

책에는 주인공 민이와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민이네 할아버지는 일명 ‘코 파기 대장’이다. 콧구멍이 커서 코딱지가 많이 나온다. 이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민이는 좋아한다. 할아버지가 엄지와 검지로 코딱지를 돌돌 말아 톡 튕기는 모습도 민이에겐 재밌다. 마치 태권도를 잘하는 사람에게 검은 띠를 주는 것처럼 코딱지 멀리 튕기기의 검은 띠는 할아버지의 차지일 것이라고 민이는 확신한다.

할아버지는 민이에게만 코딱지를 멀리 튕길 수 있는, ‘코 파는 비법’을 알려준다. 둘만 아는 비밀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민이에게도 코 파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의 비밀이 생긴다. 바로 흔들리는 앞니다. 혀로 쓱 밀어도 흔들거리고 손가락으로 슬쩍 건드려도 흔들거린다.

민이는 흔들리는 앞니를 잃지 않기 위해 좋아하는 간식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이런 민이를 보고 앞니를 빼야겠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전한다. 할아버지라면 진짜 좋아하는 것과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않는 법을 알려줄텐데 통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민이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할아버지는 콧구멍에 고무관을, 손등에는 주삿바늘을 꽂은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힘없는 할아버지에게 기운을 주기 위해 민이는 자신의 앞니를 만져보게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손을 갖다대자 앞니가 쑥 빠져버린다. 민이는 과연 좋아하는 것과의 이별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책은 어린 손녀와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할아버지를 보여주면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떠오르게 한다. 앞서 저자는 딸과 할아버지의 추억이 더 많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썼지만 결국 책을 쓰고 난 뒤 자신이 가장 위로받았다고 고백한다.

이별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 혹독한 이별을 우리는 어떻게 견디며 살아야 할까? 저자는 소중한 이들의 흔적을 품은 채 그저 삶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떠난 이에 대한 최고의 공양이라고.

책은 앞으로 수많은 이별을 겪어야 할 그의 딸과 독자들에게 이별 또한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임을 알려준다.

#제주여성의 선각자 ‘최정숙’의 일생

박재형 ‘수도자의 삶을 살다간 독립운동가, 제주교육의 선구자 최정숙’(디자인 늘, 289쪽, 비매품)

▲ 책 ‘수도자의 삶을 살다간 독립운동가, 제주교육의 선구자 최정숙’ 표지.

제주의 대표 여성 독립운동가, 최정숙의 삶을 재조명한 책이 나왔다. 저자는 2009년 신성학원 100주년을 기념해 ‘수도자의 삶을 살다간 독립운동가 제주교육의 선구자 최정숙’을 펴냈다.

그가 쓴 책은 최정숙의 삶과 신앙을 담아 도민들에게 최정숙이라는 인물을 알린 마중물의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존 책에서 미흡한 부분을 보충해 개정판을 발간했다. 저자는 신앙인과 교육자, 자선가, 독립운동가로 살았던 최정숙의 일생을 토대로 한 실제 자료를 수집해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책을 써 내려갔다.

책은 ‘배움의 길’, ‘서울유학과 3·1운동’, ‘문맹퇴치 운동과 의학공부’, ‘제주교육의 선구자’, ‘수도자로 산 일생의 아름다운 결말’ 등으로 크게 나눠 김만덕에 이은 제주여성들의 선각자인 최정숙의 삶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책 말미에는 1993년 애국지사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은 이력 및 약력이 수록됐다.

#인생의 여정에서 발견한 까미노

여창수 ‘까미노에서 만난 흰수염고래’(도서출판 각, 236쪽, 1만5000원)

▲ 책 ‘까미노에서 만난 흰수염고래’ 표지.

꾸준히 걸어온 길을 멈추고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16년 동안 몸담은 회사를 그만두고 저자는 40일간의 행보를 기록했다. 책은 경험과 생각을 담은 자서전적 수필로 순례길을 걸으면서 느낀 감정들을 전달한다.

순례길을 걷는 과정에서 저자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적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했던 시간과 그 속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짐작케 한다.

바다가 없는 길에서 저자는 거대한 흰수염고래를 마주했다. 커다랗고 아름다운 고래의 눈을 보면서 공포와 외로움, 동시에 강한 에너지를 느꼈다. 일상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환경에 처한 두려움을 모두 이겨내는 힘을 알아본 것이다.

저자는 40일간의 까미노 여정으로 인생이 크게 변할 거라 말하지 않는다. 까미노가 가진 의미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까미노 그 자체가 좋은 경험이라 말한다.

#팝콘을 치우면 언제나 새로운 영화가 시작돼

백수린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마음산책, 232쪽, 1만3500원)

▲ 책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표지.

작가 백수린이 짧은 소설을 모아 책을 펴냈다. 책은 평범한 일상을 사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어디서든 마주쳤을법한 우리 주위의 모습, 작가는 이들의 하루를 보여준다. 무엇을 잃어버린지도 모른채 그저 살아내기에 바쁜 현대인들의 마음을 비춰본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게 되는 상실들을 꺼내고 이내 위로한다.

책에 수록된 이야기 중 ‘언제나 해피엔딩’에는 대학 행정 조교로 일하는 민주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이제껏 살았던 삶이란 꿈꿔온 것들을 조금씩 하향 조정하는 날들의 연속인 듯 느낀다.
강의를 하는 선생의 휴강 공지를 모르고 출석했다가 사무실에서 차 한 잔을 얻어 마신다.

그 시기만 지나면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냐는 말에 선생은 ‘엔딩이 어떻든 누군가 함부로 버리고 간 팝콘을 치우고 나면 언제나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다음엔 다 괜찮아져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위로가 필요한 날, 마음이 따뜻해지는 13편의 이야기와 함께해보는 것도 좋겠다.

#기쁨과 아픔 모두 시에 오롯이

김항신 ‘꽃향유’(책과나무, 168쪽, 1만원)

▲ 책 '꽃향유' 표지.

“삿갓을 눌러쓴 물오른 녀석 햇볕과 해풍에 압사되어 차지게/ 굳어 있던 것/ 석쇠에 올리자 또 한 번의 목숨 잡으려 비비고 뒤틀며/ 행위적 본능 뒤에 한생을 마감한다는 것/ 살아 있어도 죽어서도 아쉬움인지 지구에 붙어살고 싶은/ 끈끈한 것// 살아 있는 것들을 회유하듯” (시 ‘회유하듯’)

문학의 꿈을 향해 꾸준히 달려온 시인이 첫 시집을 펴냈다. 시집은 1부 ‘두근두근 콩닥콩닥’, 2부 ‘별과 꽃향유’, 3부 ‘애기 업은 돌’, 4부 ‘삼양동 연가’, 5부 ‘본능의 껍질’ 등으로 나눠져 70여 편의 시들이 수록됐다.

시 제목 ‘꽃향유’는 제주자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해살이풀이다. 꽃향유처럼 시인은 자신이 쓴 시들로 그의 일생을 담백하게 풀어낸다. 특히 3,4부에 수록된 시 ‘애기업은 돌 - 어머니’와 ‘방울방울 방울아 2 봄 여름 가을 겨울’, ‘백설의 길’ 등을 통해 고향과 부모,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그려놓았다.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소중함을 솔직하게 담은 시집이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써 내려간 동시

김정희 ‘고사리손 동시학교’(한그루, 111쪽, 1만2000원)

함덕에서 동시 전문책방 ‘오줌폭탄’을 열면서 시인, 아동문학가, 시낭송가, 그림책 작가 등으로 활동중인 김정희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동시학교’라는 제목에 맞춰 책은 7개의 반으로 나눠 62편의 동시를 실었다. 책 제목은 저자가 운영하는 동시교실의 이름과 동일하다. 그곳이 책으로 다시 태어나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책은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하며 아이들처럼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담겼다. 특히 이번 책의 그림은 저자가 직접 그려 완성했다. 저자의 책방으로 가는 길목 동네 벽에 아이들과 ‘동시올레’라는 벽화 그리기를 함께 했다.

표지에 있는 그림이 바로 그 벽그림이다. 책은 민들레 꽃씨와 강아지풀, 달팽이, 병아리 등 어린이들의 눈에 자주 보이는 작은 생물들에 눈길을 준다. 그의 시선은 고래와 바다, 공룡으로 옮겨가고 우주까지 뻗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