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기획특집작가의 작업실
"남겨질 흔적보다 실재(實在)에 집중해야"(8) 안세현 작가
부재로 느낀 부조리·생의 의미
이전과 다른 상실 작업 이어져
죽음, 존재 공간 소멸되는 형태
임청하 기자  |  purenmul@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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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7  17: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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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임청하 기자] 상실의 연속인 시대에 살고 있다. 전세계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끝나지 않은 전쟁과 테러, 사고가 일어나고 그에 따른 희생과 죽음이 잇따른다.

꼭 사회가 위협하지 않아도 상실은 갑작스레 일어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불청객이다. 누구나 인생의 길을 걷다보면 어느 시점에서 부모를 비롯한 형제, 자매를 잃으며 친구를 잃는다.

안세현 작가(36)는 재작년에 시아버지를 잃었다.

   
▲ 안세현 작가.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의 시아버지는 단순히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관계를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앞서 상실을 경험해보지 못한 건 아니지만 시아버지의 부재는 이전과 다른 감정들을 느끼게 했다. 그 감정들은 곧 작업으로 연결됐다.

“개인적인 일에서 시작했지만 누구나 쉽게 겪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확장됐다”는 그는 누군가 없어지며 생기는 ‘부재’라는 현상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곱씹었다.

상실을 겪고 남겨진 이들의 심정은 처참하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존재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흘러가는 세상이다. 남겨진 이들에게는 부조리하다고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실제 맞닥뜨린 부재에 앞서 뇌리에 박힌 장면도 있었다. 우연히 식당에서 밥을 먹던 그는 이라크전의 현장을 중계하는 방송을 보게 된다. “포탄이 마을에 떨어지고 사람들이 놀라 일어나는데 그걸 보며 밥을 먹는 제가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다”던 그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단면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 안세현 작.

 

소설가 알베르 카뮈에 따르면 인간은 부조리의 감정에 빠져 좌절하기보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좌절을 각오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노력을 거듭해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카뮈의 말에 공감한 그는 지난해 ‘Phenomenon’을 주제로 소설 ‘이방인’의 일부 장면을 보여주는 설치 작업을 소개했다.

공간 연출을 전공한 그에게 죽음은 존재가 차지하던 공간이 소멸돼 가는 형태로 가장 먼저 인식됐고, 전시는 그에 대한 결과였다.

그의 작업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반의 많은 부분들이 견고한 것이 아닌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부재를 인식한 ‘현상’에 집중한 다음 이어지는 전시에서 그는 ‘살아있는 순간’에 집중했다. 전시 ‘Phenomenon 0’에서는 얼음을 캔버스 위에서 건조하고 벽에 건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 흔적이 남는다.

그는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 우리가 살아있는 순간”이라며 “흔적은 곧 관계”라고 전했다.

각자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게 관계이기 때문에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살아가는 동안 어떤 흔적을 남길 지 고민하기보다 생(生) 자체에 가치를 두고 집중하자는 말이다.

부재는 없음이 아닌 흔적이며, 존재한다는 사실이 의미를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지속되는 삶에서 과연 어떤 것을 품고 나아가야 하는 지 되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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