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지금은 여행중’ 표지.

[제주신문=임청하 기자] #섣부른 위로 대신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

김우주 ‘지금은 여행 중’ (창비, 136쪽, 1만800원)

코로나19 여파로 교육환경이 낯설게 변했다. 이에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전국적으로 등교 개학이 차례차례 이뤄지는 요즘, 아이들이 소외당할 수 있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동화집이 나왔다.

신인 작가 김우주씨의 ‘지금은 여행 중’이다.

여느 때와 같은 쉬는 시간,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공부하고 있다. 갑자기 교실에 있던 한 아이가 “얘들아, 여기 좀 봐”하고 정적을 깬다.

의자를 가리킨 아이의 손끝에는 개구리가 있었다.

아이들의 관심은 모두 개구리에게 쏟아졌다. 창문을 한번도 열었던 적이 없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과연 이 개구리는 어디서 왔을까 의심한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아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한다. “개구리가 있던 이 자리, 언제부터 비어있었지?”라고.

책은 교실, 택시, 공항, 슈퍼 등을 배경으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총 일곱가지의 이야기로 보여준다. 아빠가 모는 택시를 타고 학원에 가는 아이, 배를 채우기 위해 슈퍼에서 먹을 것을 훔치는 아이, 돌아가신 아빠와 꼭 닮은 남성을 만난 아이 등 책 속의 단편에는 각자의 그늘이 있지만 저마다의 독특함을 간직한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소외당하는 어린이들을 주목해 그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이를 통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한다.

그리고 잔잔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발상으로 그들을 위로한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함부로 희망을 말하지 말고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어있는 옆자리에 앉는다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등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조심스런 손짓을 내민다.

특이한 점은 책에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나’로 쓰여진 경우가 많고 단편 ‘누구’에서는 모든 인물을 숫자로 부른다. 이때문에 여러 등장인물에 자신을 대입해 읽을 수 있다는 재미가 있다.

단편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펜 선과 따뜻한 색으로 그려진 신은정 화가의 그림은 덤이다.

▲ 책 ‘1719’ 표지.

#내 길은 내가 스스로 만들거야

핫펠트 ‘1719’ (우주북스, 152쪽, 2만7000원)

“더 세상에 소리치고 시끄러워져도 돼. 더 소리 내서 꿈을 현실로 만들어”

뮤지션 핫펠트의 첫 정규앨범 ‘1719’와 함께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나왔다.

책은 오늘날에 오기까지 핫펠트라는 사람의 면모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됐다. 그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본격적인 행보를 보여줬던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했던 그때의 감정과 마음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특히 평소에 다양한 인터뷰를 비롯한 기고, 추천사 등을 의뢰받으며 필력을 인정받은 핫펠트만의 문체로 나온 책인만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책 제목을 따라 1719권으로 한정돼 출판된 이 책은 작가만의 독특한 색감과 관점이 돋보이는 입체회화를 선보이며 활동중인 김지윤 작가의 삽화와 핫펠트의 글이 어우러졌다.

솔직하고 또 솔직한 책을 앞에 두고 뮤지션 핫펠트와 인간 박예은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 책 ‘눈동자에 내려앉은 흰 구름’ 표지.

#슬픔이 슬픔을 위로합니다

고은별 ‘눈동자에 내려앉은 흰 구름’ (재정사(JJBooks), 36쪽, 1만5000원)

아이들에게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만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 어른들의 바람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어린 아이들도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슬픔이 있다는 사실이다.

책은 아이가 마음 속에 간직한 슬픔을 치유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주인공 영빈이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함께 불쌍한 것을 보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이 책의 묘미는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 맑고 투명한 원화와 그래픽 일러스트 작업을 통해 그려낸 그림이다.

사랑을 가득 안고 살아가고자 하는 영빈이에게서 순수한 동심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프랑스어로 번역돼 한글을 널리 알리고 국내 작가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저자의 의도가 반영됐다.

한편, 저자는 시노래 ‘별’, ‘달님은’, ‘나는 내가 좋아요’ 등을 지었고 대표작으로 ‘아빠와 크레파스’, ‘하늘을 나는 자전거’, ‘바다의 별’ 등이 있다.

▲ 책 ‘여행 후 오늘’ 표지.

#여행, 퇴사, 세계일주...그 이야기의 결말은?

임지혜 ‘여행 후, 오늘’ (하모니북, 184쪽, 1만5000원)

흔히 볼 수 있는 여행 에세이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이 책은 기존 책들과는 달리 여행이 시작할 때가 아닌 여행이 모두 끝난 후부터 시작한다.

2년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여행 후의 현실을 담았다. 얼핏 떠올려보면 여행 후의 삶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날 것만 같다.

하지만 저자를 기다리고 있던 일상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질문과 후유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분명 여행을 가기로 결정해보니 평생 못 봤을 수도 있었던 풍광들을 마주했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뒤 선택으로 인한 포기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저자는 몸소 깨닫는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을 잘 마주해야만 더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다면서, 여전히 흔들리는 삶의 ‘여행자’지만 여행의 힘으로 오늘도 여행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 책 ‘내러티브&넘버스’ 표지.

#숫자만이 아닌 스토리도 중요하다

애스워드 다모다란 ‘내러티브&넘버스’ (한빛비즈, 464쪽, 1만8000원)

각자 물건을 살 때 판단기준은 다르다. 특히 가격 외에도 그 상품이 가진 이미지나 맥락 등 스토리가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뉴욕대 레너스 스턴 경영대학원 재무학 교수이자 기업 가치평가의 권위자로 알려진 저자는 기업이 가진 내러티브, 즉 이야기의 힘에 주목한다.

이익이 전혀 나지 않는 기업에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매겨지기도 하고, 어떤 스타트업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반면 다른 스타트업은 그러지 못한다.

저자는 스토리의 힘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고 숫자에 의미를 더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숫자를 중심으로 한 내러티브의 장점과 도전, 그리고 함정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또 스토리가 타당성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가치평가 분야를 알려준다.

기업가들에게 저자는 성공적인 사업을 지속하려면 현실 여건에 따라 필요하다면 스토리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 책 ‘고대 그리스인의 생각과 힘’ 표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 속으로

이디스 해밀턴 ‘고대 그리스인의 생각과 힘’ (까치, 431쪽, 1만7000원)

1930년 이후 여러 판(版)으로 출판되며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은 베스트셀러 ‘고대 그리스인의 생각과 힘’이 다시 우리 곁을 찾는다.

책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정신과 업적을 생생히 기록했다. 교직에서 은퇴하고 작가로 첫 발을 딛은 저자는 고대 그리스 세계를 20세기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이에 대한 시대 배경을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당시 그리스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상과 정치적 상황, 사회적 분위기를 함께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그리스인들과 사회의 정신과 힘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역할에 대한 심도 있는 해석을 제시한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크세노폰의 작품을 통해 페르시아·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겪은 아테네와 나아가 그리스 사회가 어떤 사회적 변화를 겪게 되고, 그로 인한 외적 변화가 그리스인들의 이성과 정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