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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변함이 없는데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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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31  17: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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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닫혀 있던 창문을 열어보니 벌써 6월이다. 철 이른 입춘 아침에 희망을 고대했던 세상은 예상치도 않은 바이러스 감염 확산으로 일상을 멈추고 창문을 꼭꼭 닫아버렸다. 돌담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꽃의 순수한 미소,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벚꽃의 향연, 개울가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올챙이들의 숨소리도 우리의 안중에서 사라져 버린 계절이었다.

잃어버린 봄을 애달파하는 것은 잔인한 바이러스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동행했던 자연의 소중한 속삭임들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봄은 생명을 잉태하는 창조의 순간이요, 삶의 첫 장이다. 봄은 그렇게 시작되었어야 했었다.

우리가 모르던 사이 들녘은 푸른 물결이다. 가파도 청보리밭에서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가운데, 계절은 망종으로 들어서고 있다. 망종이란 벼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다.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망종은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알맞아 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는 시기로 발등에 오줌 싼다.’라고 할 만큼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다.

내가 기억하는 망종은 보리 베기로 엄청 바쁜 시기였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휑한 보리밭에서 반짝이던 반딧불이를 보면서 무서워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그랬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리고는 풋보리 이삭을 뜯어서 손으로 비벼 보리 알을 모은 뒤 솥에 볶아 맷돌에 갈아 그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그것뿐인가. 힘든 보리 수확을 끝내고 나서, 어머니가 보리를 볶아 만든 미숫가루를 식은 밥에 말아 주었다. 볶은 쌀에 당원을 곁들인 그 맛은 그 시절의 풍경이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 음력 4월에 망종을 맞게 되는 것이 절기상 좋은 일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날 농경을 떠난 산업사회에서 따질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이치에서 무심히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본다.

사람은 자연 생물체로 태어났기에 이미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갓난아기 시절, 부모님이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그 이름이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듯이, 이것은 무한에서 유한으로, 개방에서 규정으로, 비분법에서 이분법으로 옮겨가는 길이었다. 이 구분의 기준에서 새로운 관념들을 끝없이 늘려나갔다. 이 모든 행위와 사고의 주체를 자처했던 나는 몸과 마음을 갖춘 하나의 완전한 실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두툼한 세속의 허물 안에서 혼자임을 느꼈던 이유는 무엇일까. 존재하는 것은 존재일 뿐이다. 두렵고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온 다음에야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존재를 느낄 수가 있었다. 나와 남이 있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배웠고, 개인이 아닌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야 검정 송악 열매를 쪼아 먹는 까치들의 곁눈질, 울담을 마음대로 타고 올라가는 거지덩굴의 잿빛 얼굴, 굵고 주름살이 파인 하눌타리의 흔들거림의 이유를 들을 수가 있었다.

망종은 부모님을 생각하게 한다. 잃어버린 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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