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위원회가 최종 관문되나

　도지사가 예산안을 제출한 이후 의회에서 신규·증액 한 예산이 있을 경우 도지사가 이에 동의하고 의회에서 가결되면 예산으로 확정된다. 제주도 지방보조금관리조례에 따르면 도지사가 동의한 의회의 신규 예산에 대해서는 보조금심의위원회의 심의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제주도가 도의회에서 신규·증액된 지방보조금사업에 대해서도 지방보조금심의를 받도록 하고 기존의 심의대상 아닌 사업들도 심의를 강제하면서 심의를 거치지 않는 경우 교부세 감액과 재정상 불이익을 예고함으로써 제주도 예산에 대한 의회 고유권 침해 문제가 불거졌다. 제주도의회는 3일 도지사가 동의한 신규사업에 대한 보조금 심의와 관련해 감사위원회에 감사를 청구하기로 의결하면서 이 문제가 더욱 본격화됐다.

　지방자치법상 도의회는 지자체장의 동의 없이는 신규 비목설치와 예산금액을 증가하는 예산의결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의회의 신규 사업예산은 도지사 동의절차를 통해서 그 적절성을 확보하게 된다. 의회 심사, 도지사 동의를 받았음에도 이러한 지방보조금 교부사업들마저도 모두 사후적으로 보조금심의위원회의 심사를 재차받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절차가 되풀이 된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제주도는 도지사의 동의과정에서 보조금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았기에 그 교부결정 전 보조금심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나 이는 법치주의와 법률유보원칙을 벗어난 행정운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도지사의 동의절차에서 행해져야 할 적절성 심사를 의회의 예산안 의결 이후로 사실상 운영함으로써 예산을 심의·확정하는 의회의 고유 의결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방보조금의 편성 및 집행 내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당연히 담보돼야 하고 법령에 의해 구성과 임무가 법정된 보조금심의위원회의 역할이 이에 있다. 예산안 마련과정과 의회에서 수정·신설된 예산에 대해서 그 의결 전에 보조금심의위원회의 역할이 있다고 해석하고 운영돼야지 보조금심의위원회의 권한이 예산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권자이자 최종 관문이 돼서는 안된다.

심의위원회 명단 공개해야

　더욱이 현행처럼 보조금 심의위원회가 비공개로 운영된다면 심의위원회의 공정성을 담보하기란 더욱 어렵다. 당연직 심의위원을 제외하고 위촉직 심의위원의 명단을 비공개한 이유에 대해 제주도는 사업과 관련된 관련된 청탁금지, 위원들의 심의에 대한 부담을 방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확정된 보조금 예산이 감액되는 경우 교부대상 당사자의 의견제출기회나 소명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데다가, 공정한 심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당사자에게 보장된 심의위원에 대한 기피신청을 무력하게 할 우려가 있다. 심의위원회의 공정한 구성에 대해 막연히 신뢰해야만 하고 현행대로라면 예산안을 심의하는 도의회 위에 보상심의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상 보조금 사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의 권익보호에도 적절치 못하다.

　최근 민간보조사업에 투입될 지방 보조금 예산이 수차례 일괄 삭감됐고 이는 제주도의 추가 재정마련 일환에서 이뤄졌다. 코로나19 사태로 거액의 재정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그 필요성이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 예산의 최종 집행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미 확정된 예산을 재량으로 변경할 수 있는 그럴듯한 구실로서 보조금 심의가 악용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따라서 고유권 침해 소지가 있는 현행 방침에 대한 우려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