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에서 본 상담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6학년이 되어도 제로 제 이름자를 쓰지 못하고,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한 남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정말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지난 5년간 선생님들은 그 아이를 무조건 문제아로만 몰아세웠다. 그 아이도 부모도 공부를 포기한 상태였다. “그래 공부 좀 못하면 어떠랴! 씩씩하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것이 그 아이에 대한 부모의 위안이었다. 그는 6학년이 되어서도 역시 학교에 가길 싫어하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숨을 몰아쉬며 엄마를 불러댔다. “엄마, 엄마! 선생님이 날더러 반장하라고 그러셨어!” 엄마는 피식 웃었다. “반장은 무슨 반장, 싸움 반장도 반장이냐? 말썽쟁이 반장?” 엄마는 아들을 믿지 않고 핀잔을 주며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에요 엄마! 선생님이 저보고 반장 하하고 그러셨어요. 청소반장!”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공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게다가 청소까지 날마다 시키다니……. 엄마는 언제 한번 시간을 내여 선생님께 따지러 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들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평소 외모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아이가 어쩐 일인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를 감고 거울 앞에 서서 모양을 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 가기 싫어서 등을 떠다밀다시피 보내던 등굣길을 스스로 일찍 일어나 늦었다고 성화하며 휘파람을 불며 등교를 서둘렀다. 

그의 담임선생님은 그에게 칭찬의 처방을 내리셨던 것이다. “야 너 정말 청소 잘한다. 어떻게 이렇게 깨끗이 닦았니?” 그 아이에게 선생님은 그렇게 칭찬으로 다가갔다. 지금껏 그 아이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 그 아이에게 칭찬은 초콜릿처럼 달콤하였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청소를 잘한다며 청소 반장을 시키셨고 다음에는 다른 칭찬으로 이어갔다. “어쩌면 이렇게 머릿결이 좋으니? 심부름도 잘하는구나!” 라는 칭찬을 점차로 나중에는 공부에 관심을 보이도록 그를 끌어들였다. “야, 너 만들기 정말 잘하는구나! 글씨도 이젠 정말 예쁘게 쓰네? 야 이렇게 어려운 수학 문제를 어떻게 풀었니? 여러분 우리 이 아이에게 박수 좀 쳐 줄래요!” 학기 초에 한글도 모르던 그 아이는 학기말엔 정말 반장이 되었고, 졸업할 때는 진취상을 받았다. 

어느 해 설인가 나는 차례를 지내러 종손 댁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집안 형제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당구 시합을 하기로 의견을 모아 당구장에 가게 되었다. 당구장에 간 우리 형제들은 서로의 우애를 다지며 당구를 치고 있었다. 한참 당구를 치고 있는데 낯선 청년이 다가와 불쑥 인사를 하였다. “저 모르시겠어요? 선생님! 저 장선이에요. 이거 우리 가게예요.” 그 청년은 내게 선생님이라 부르며 깍듯했다. 나는 교육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생각한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해내었다. 

“장선이라. 어, 네가 정말 장선이냐, 정말 반갑다. 이런 곳에서 널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구나.” 나는 그를 부둥켜 않으며 반가워하였다. “선생님 술 한 잔 하시러 가시죠.” “아니야 괜찮아. 내가 무슨 선생님이라고…….” 나는 쑥스러워 그를 만류하였다. 그는 나의 옆구리에 팔짱을 끼고 나를 근처 식당으로 안내하였다. 

“그때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나는 뭐가 됐을 런지 몰라요.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는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내게 술을 권하였다. 나는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기분 좋은 술을 대접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자취방에서 초등학생들을 십여 명 모아 가외를 하며 고학을 하였었다. 그때 윗글의 아이처럼 한글도 모르고 말썽꾸러기인 한 아이를 맡아 공부를 가르쳤던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아이를 진심으로 내 동생처럼 가르쳤다. 같이 야구도 하고 구슬치기도 하며 칭찬으로 그가 한글을 깨우치고 정상적인 6학년 학생이 되도록 만들었었다. 그런 그가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을 마쳤고, 이제 사회의 일원으로 당구장을 경영하며 원만하게 살아간다니 정말 기뻤다. 

칭찬은 꼭 어린 아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칭찬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생활의 활력소가 되며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주는 촉매 역할을 한다. 지금 당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칭찬을 해 주어라. 칭찬하는 습관이 든 당신에게는 좋은 아내와 좋은 이웃과 좋은 친구가 기다릴 것이다.

김순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