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오피니언제주칼럼
가을 나들이
김구하  |  수필가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10.04  16:03:3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집콕하다가 셋째 아이를 출산한 딸네 집을 방문했다. 병원에서 출산하는 진통의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내 마음이 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방역이라는 정부의 지침에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산후조리원으로 가는 짧은 시간에 겨우 외손주의 얼굴을 보았지만, 아버지란 이름에서는 딸의 건강이 우선이다. 외손주가 너무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우나 나에게는 딸에 대한 걱정이 먼저 앞선다. 달포가 지나는 동안 딸은 한 번의 병원 진료로 외출을 했을 뿐이다. 얼마나 갑갑했는지 엄마에게 바깥 하늘은 무슨 색이냐고 물었다는 말에 갑자기 가슴이 내려앉고 울컥해졌다.

 시간을 냈다. 아내는 출산한 갓난이를 보고 내가 딸을 데리고 바깥 구경을 시켜줄 요량이다. 갓난이가 걱정됐는지 딸은 성큼 우리들의 계획에 순응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그럴까하며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는다.

 용두암 해안으로 갔다. 인파가 없는 곳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딸은 두 팔을 하늘 높이 벌리고는 긴 호흡을 한다. 마치 닫혀 있던 새장에서 벗어난 한 마리 새가 비상을 준비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상쾌한 바람과 함께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멈추었던 심장을 움직이게 했고, 상큼하게 높아진 파란 하늘 뭉게구름에 가을이 실려 왔다.

 잃어버린 봄 여름 속에 가을은 없을 줄 알았는데 자연은 파도 소리와 함께 가을이 스며들었다. 부딪치다 흩어지는 하얀 포말 속에 가을의 소리가 담겨있다. 해안가 바위 틈새에서 잠깐의 기척, 늙은 쥐가 먹이를 찾아 밖으로 나온다. 곳간을 마다하고 바다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계절은 황막한 달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해주는 시간이다. 언뜻,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은 가슴에 있고 영혼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의 주는 은총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속 좁은 인간들의 생각이었을 뿐, 자연은 어머니의 품속같이 포근함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풀벌레 소리가 교향곡처럼 울려 퍼지는 가을, 풍요로움 속에 내리는 파란 하늘의 빛깔도 가슴에 품고만 싶어진다. 힘든 일이 있으면 바람결에 흘려보내고, 사는 게 답답하고 우울할 때에는 파란 하늘을 보고 웃으며 날려 보내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가을은 그리움으로 스며든다. 누군가의 따뜻한 눈길과 포근한 입술에서 나오는 향기가 그리움의 빈자리를 채운다. 선종하신 법정 스님께서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렘을 친구에게 먼저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했던 시 한 편이 다가온다. 만남이 사라진 곳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그것은 어둠과 절망이 깊은 계곡을 지나 흐르는 강물일 뿐이다. 이런 강에서는 어떤 희망의 배도 띄울 수가 없다. 냇물이 흘러서 강으로 가듯 우리 인생도 물 흐르듯 돌다가 어느 순간 멈춰지면 베옷 한 벌 입고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삶의 끝자락에 가서는 모두 다 평등할 뿐이다.

 산모인 딸과의 조심스러운 외출은 가슴으로 함께했던 시간인 것 같다. 올가을 그리운 얼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봄은 어떨까. 인생이란 삶의 자리를 이어가는 징검다리가 아닌가.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고충처리인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63113)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공로 9-1(도두일동)  |  대표전화 : 064)744-7220  |  팩스 : 064)744-7226
법인명: ㈜제주신문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제주 아 01014   |  등록일 : 2007년 10월 24일  |  대표이사:부임춘  |   발행인:부임춘
편집인:전아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아람
Copyright 2011 제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ejupress@jejupre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