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내년도 예산에 공무원 시찰·연수성 경비를 70% 이상 삭감하는 등 행정 내부 경비를 줄여 확보한 80여 억원을 민생경제 활력화 사업에 투자하기로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업무추진비 20% 삭감은 사안의 심각성에 걸맞지 않아 실망스럽다. 전체 사업 예산이 줄어도 업무추진비는 사실상 그대로 사용하겠다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내년도 세출 축소는 올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거리두기가 확대되면서 대규모 관광시설 등의 영업이 부진했으며, 토지 거래 감소와 주택 공급 사업의 침체로 지방세 수입 격감이 예상되고 있다. 시급하지 않은 사업과 선심성 사업의 배제와 소모적 경비 삭감은 너무나 당연하다.

　업무추진비는 말 그대로 업무를 추진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도지사, 실·국, 과별 단위 및 행정시, 출자·출연기관별로 편성된다. 주로 기관운영, 시책추진, 부서운영 비용으로 충당된다. 하지만 주된 사용처는 개인 식비, 회식비, 사업관련 접대비 등으로 사용된다. 실제로 사용 기준이 뚜렷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산방법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어 ‘눈 먼 돈’의 성격이 강하다. 가령, 과 단위 회식을 가졌다면 식비가 업무추진비로 충당됐다고 보면 된다.

　더구나 내년 지방 행정 업무도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평소처럼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일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필요 이상의 업무추진비를 확보하면 쓸 곳이 없어 직원 회식비 등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지사와 부지사, 실·국장 등 고위 공무원의 업무추진비 사용처 역시 평소만 못할 것이다.

　제주도는 도지사부터 과 단위까지 업무추진비를 50% 이상 삭감해야 한다. 다른 행정 내부 경비는 70% 이상 삭감하겠다면서 업무추진비만 20%를 줄이는 것은 누가 봐도 ‘내가, 우리 부서가 쓸 비용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 밖에 안 된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고통 분담의 시대적 정신에도 어긋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