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기획특집탐라 돌하르방 역사 설화 길따라
‘하멜표류기’가 맺어준 인연…돌하르방으로 더욱 돈독하게17. 해외에 나간 제주돌하르방 ⑥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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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14  17: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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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 스페르웨르호 항해 중 태풍 만나 제주 표착
1968년 귀국 후 유럽 최초 문헌으로 한국 문화 소개
한국전쟁 참전·거스 히딩크 등 양국 우호증진 이어져

서귀포시, ‘하멜의 고향’에 제주돌하르방 기증(뉴스1, 2016. 05. 02.)에 의하면, 2016년 4월 28일 네덜란드 호르큼시에서 제주 서귀포시 방문단이 돌하르방을 기증해 제막식을 가졌다. 한국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인 ‘하멜표류기’의 저자인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의 고향에 제주의 돌하르방이 세워졌다. 이번 돌하르방 기증은 2015년 6월 네덜란드와 서귀포시의 교류사업의 하나로 논의돼 호르큼시 및 하멜재단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네덜란드 현지에서 이뤄진 기증식에는 발켄렌데 네덜란드 전 총리와 벨드하위젠 호르큼시장, 피트아이슬스 하멜재단 이사장, 호르큼시의회 의원들, 한국전쟁 네덜란드 참전용사, 지역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돌하르방은 예로부터 제주에서 지역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해 왔듯 호르큼시를 지켜주고 서귀포시와 호르큼시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하멜·박연이라는 인물과 연계한 관광마케팅을 논의하는 첫 자리가 됐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 헨드릭 하멜
출생-사망(1630 ~ 1692), 국적(네덜란드), 주요저서(하멜보고서, 1668).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 선원으로 1653년(효종 4) 7월 하멜은 상선 스페르웨르(Sperwer) 호를 타고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게 되었는데 항해 도중 태풍을 만나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하였다.  당시 제주목사 이원진은 하멜 일행을 체포하여 감금하였고 당시 네덜란드 출신으로 조선에 귀화한 박연(네덜란드 이름 얀 얀스 벨테브레 Jan Janse Weltevree)이 한양에서 내려와 통역을 하였고 하멜 일행의 소속과 정체가 파악되었다. 하멜 일행은 제주도에서 탈출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고 10개월 동안 감금되었다가 이듬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그 후 하멜은 여수 전라좌수영에 배치되었고 고된 노역과 생활고에 지쳐 탈출을 결심하였다. 1666년(현종 7) 마침내 7명의 동료와 함께 배를 타고 일본 히라도로 건너가서 나가사키로 탈출하였다.  1668년 귀국하여‘하멜표류기’로 알려진 기행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한국의 지리·풍속·정치·군사·교육·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 네덜란드 호르큼시 제주 돌하르방
네덜란드 남홀랜드주 호르큼시는 암스테르담으로부터 75㎞ 정도 남쪽에 위치한 중남부의 내륙 도시로, 네덜란드 남부 지방의 수운·육운·철도 교통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였으며, 해양·해운산업과 관련 전시회가 발달했다. 특히 헨드릭 하멜의 고향이며, 세계적인 조선사인 다멘사(Damen Shipyards)의 본사가 위치해 있기도 하다. 네덜란드는 한국전쟁 참전 16개국의 일원으로서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계속 우리나라의 입장을 지지해온 전통적 우방국이며 거스 히딩크가 2002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에서 4위를 기록하여 서로 환영한다는 뜻에서 네덜란드는 하멜의 고향인 호르큼시에 하멜동상을 세운 것이다. 이 동상과 동일한 것이 1657년부터 1663년까지 하멜이 억류되었던 전남 강진과 1663년부터 1666년까지 억류되었던 여수에 세워졌고 제주도에는 하멜 기념비가 세워졌다.

 

   
 

○ 하멜 기념비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앞 용머리해안 언덕에 높이 4m, 너비 6.6m의 크기로 네덜란드 사람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한 것을 기념해 세운 탑이 있다. 이 탑은 1980년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이 하멜 일행의 표류를 기념하고 양국의 우호증진을 위해 각각 1만 달러씩을 출연하여 난파 상륙지점으로 추정되는 이곳에 세운 것이다.

○ 하멜 표착지의 여러 갈래
하멜일행이 표착한 곳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신동규는 한경면 고산리 큰물을 지적했고, 채바다는 신도2리 도원포구를 지칭했으며 김동전은 신도해안을 중심으로 좌우 연안을, 고광민은 동일리와 일과리 사이 대야수포를, 장영주는 장한철 『표해록』에서 하멜 일행은 태풍으로 대정현 해안에 좌초 되었다가 광해가 유배하던 적거소에 10개월 머문 후 제주를 떠나 여러 곳을 다니다가 네덜란드에 도착하여 하멜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고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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