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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희생된 4·3영령들의 넋을 달래다㈔제주민예총, 31일 한림읍주민자치센터서 '4·3항쟁 72주년 찾아가는 현장위령제'
제주큰굿보존회서 집전
시 낭송·퍼포먼스도 마련
임청하 기자  |  purenmul@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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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27  16: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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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열린 찾아가는 현장위령제 도령마루 해원상생굿.

[제주신문=임청하 기자] 원통한 4·3 희생자의 넋을 달래며 학살터의 아픔을 매만지는 해원상생굿이 제주시 한림 지역에서 열린다.

㈔제주민예총(이사장 이종형)은 오는 31일 오전 10시부터 한림읍주민자치센터 주차장에서 ‘2020 4·3항쟁 72주년 찾아가는 현장위령제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을 개최한다.

이번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은 4·3 당시 희생된 이들을 위무하고 해원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된다.

한림리 지역을 중심으로 대림리 ‘붉은굴’과 동명리 ‘신겡이서들’, ‘묵은 오일장’ 등에서 희생된 200여명의 영개(영가)를 모시고 초혼풍장, 초감제, 시·노래·춤 보시, 서천꽃밭 질치기 순으로 진행된다.

굿의 집전은 제주큰굿보존회(회장 서순실)가 맡고 이종형 시인의 시 낭송, 가수 최상돈의 노래, ㈔마로의 풍물과 퍼포먼스 등이 이어진다.

4·3 당시 한림리는 한림항을 중심으로 이뤄진 해안마을로 한림1구와 2구, 진동산이라 불린 중산간마을 한림3구로 구성됐다.

1947년 3·1운동 이후 1948년 4·3 발발 직전까지 약 1년동안 2500명이 검속됐다.

이때문에 마을 청년들이 경찰의 눈을 피해 일본 등으로 피신하거나 입산해 몸을 숨겼다.

특히 한림리는 서북청년회로 구성된 경찰이 주둔하면서 경찰과 서청의 검거와 횡포를 피해 부산, 일본 등으로 밀항을 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1948년 4월 3일, 무장대가 한림리를 습격했고, 5월 10일 이들의 습격을 미리 인지한 한림 내 토벌대와 교전이 벌어졌다.

이때 무장대에 납치됐던 금악리, 명월리, 한림리, 동명리, 협재리, 귀덕리 주민 20여명은 명월리 갯거리오름, 상대리 돗지내 등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거나 행방불명됐다.

제주민예총 관계자는 “해원상생굿은 예술이 쓸모있다는 모색과 동시에 쓸모없다는 반성에서 시작됐고 예술이 원초적인 인간의 영원을 치유할 수 없다는 한계에 대한 나름의 처방”이라며 “죽은 자뿐만 아닌 살아남은 자와 함께 살아가야하는 터전을 치유한다는 ‘생명의 굿’, ‘상생의 굿’이란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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