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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 탈환의 영웅 강승우 소위 흔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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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11  17: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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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진구
 서울시의 동부에 있는 구. 경성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936년 동부 출장소가 설치됐으며, 1943년 동대문구와 성동구로 나뉘었다. 이후 고양군의 뚝도면과 광주군의 4개 면 지역이 성동구에 편입됐으며, 1975년 한강 이남 지역이 강남구로 분리됐다. 1995년 자양동·화양동·모진동·군자동 등 8개 동이 광진구로 분리·신설됐다. 아차산성·어린이대공원·뚝섬유원지 등이 있다.
 

○ 서울 어린이대공원
 골프장 용지를 서울시가 인수해 어린이 놀이공원을 조성하고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맞춰서 개장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은 동물원과 놀이공원, 식물원, 음악분수, 아리수 홍보관, 키즈오토파크, 숲속의 무대, 체험교육시설인 서울상상나라가 있다. 음악분수는 겨울, 우천이 아닐 때 가동하며 음악에 맞춰 분수의 방향과 강도, 조명을 조절한다.

 주차장은 정문, 후문, 그리고 구의문 쪽으로 3곳이 존재한다.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은 바로 정문으로 이어지고, 5호선 아차산역은 바로 후문으로 이어진다.
 
○ 아차산
 아차산성에서 벌어진 신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온달의 시신이 움직이지 않아 평양에 있던 평강공주가 달려와 넋을 달래고 나서야 관을 옮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주먹 바위는 전투에서의 패배를 안타까워하며 주먹을 쥔 온달의 모습을, 그리고 통곡 바위는 남편의 죽음에 애통해하는 평강공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범굴사에는 바위에 뚫린 두 개의 구멍이 있다. 작은 구멍에서는 가난하고 착한 이의 기도로 쌀이 조금씩 계속해 떨어지고 한꺼번에 많은 쌀이 쏟아지게 크게 구멍을 뚫은 부자에게는 큰 구멍에서는 벌레가 쏟아졌다고 한다. 

 홍계관 전설은 아차산이라는 명칭의 유래담이다. 이 산의 이름은 조선 명종 때 유명한 점쟁이 홍계관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지 못한 임금이 “아차, 내가 잘못했구나!”라며 탄식한 데서 비롯했다고 한다.
 

○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방정환 상
 필자가 서울 어린이대공원 광장에 방정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시를 썼다.

 어린이는/우리의 내일이다./건전하게 태어나/따뜻한 가정에서/사랑 속에 자라./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며/공평한 교육 속에/빛나는 우리 문화를 이어받아/새로움을 창조하는 바탕이어라.
 
○ 서울 어린이대공원 제주 돌하르방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돌하르방이 서 있다. 필자는 전국 어디든 돌하르방이 있는 곳은 다 찾아가 보았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는 몇 해 전까지는 돌하르방이 없었다. 그런데 돌하르방이 있다는 정보를 지인의 연락에 만사 제쳐 두고 찾아 나섰다. 돌하르방 두 기가 서 있었다. 마스크는 씌워 있지 않았다. 코로나19 정국 이전이라 그랬고 지난 5월 기준으로는 마스크를 쓴 돌하르방으로 변해 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는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 동화나라 프로그램에 구연강사로, 스토리텔링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며 그곳에 설치된 방정환 동상 앞에서 어린이 헌장에 나와 있는 시를 자작하기도 했다. 강승우 소위가 6·25 한국 전쟁 당시 ‘나를 따르라’라는 일화는 교과서에도 나온다. 이런 강승우 소위 동상을 찾아 여러 번 다녀오며 익숙한 곳이기에 이번 서울 어린이대공원 제주 돌하르방 편은 손쉽게 정리할 수가 있었다. 또한 강승우 소위에 대한 일대기를 그린 자서전(조국을 위해서라면 사나이 한목숨 무엇이 두려우랴! 강승우 추모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나를 따르라’ 장영주 외, 도서출판 글세계, 1991) 책자도 발간한 일이 있어 더욱 애착이 가는 곳이며 아차산에서 시사진전을 두 번 연 실적을 인정받아 2016년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또한, 2018년 5월 4일에서 6일까지 열린 서울 어린이대공원 서울동화축제에 서울시 최고 책임자와 함께 강연, 2019년 5월 6일 와글와글 동화나라 제5회 전국스토리텔링 대회 때 서울 어린이대공원 열린무대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친근한 곳이기도 하다.
 
○ 백마고지의 호국 영웅 강승우 소위 동상
 1930년생~1952년 전사로 백마고지 탈환의 영웅으로서, 조국의 운명이 위기에 처했음을 느끼고 꽃다운 나이에 조국을 구하기 위해 육탄으로 몸을 던져 장렬히 산화하신 분이다. 그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1973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호국공신 육탄삼용사 동상’을 건립하고 1990년 백마고지 전적지와 1991년 당시 한국자유연맹 제주도지부 서쪽에 ‘백마고지의 영웅 강승우 소위 동상’을 건립 하는 등 업적을 만대에 잊지 않고 기리도록 했다. 

 참고로 제주도 자유회관 서쪽 편에 세워진 백마고지의 영웅 강승우 소위 동상 건립 취지문을 보면, 6·25 한국전쟁으로 조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있음을 깨달은 그는 자원입대해 구국의 전열로 떨쳐 나셨던 것이니 1951년 2월 육군소위로 임관되면서 구사단 이십연대 일대대 일중대의 소대장으로 배속됐고 1952년 10월 12일 오전 8시 중공군 2개사단과 대치했을 때 한국전쟁의 전세를 크게 가름했던 백마고지 탈환 작전에서 뒤를 따라나선 안영권 하사와 오규봉 하사와 더불어 육탄으로 혈로를 개척함으로써 백마고지 탈환의 신화를 창조해 냈다라고 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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