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서기"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올라간 김에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을 관람했다.

시립 미술관팻말을 보며 찾아 든 곳이 후문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오전에 서둘렀는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뒤쪽에서도 줄을 만들고 있었다. 우연히 중간에 서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끼어들기 한 셈이었다. 시간도 줄이는 행운을 잡은 것이었다. 이처럼 절로 얻은 시간의 절약을 무어라 해야 할지. 사실 뒤쪽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또 앞쪽에서 그어 놓은 선을 일탈하는 이도 더러 보았다. 사람을 찾는 척 하며 끼어드는 한 무리가, 허나 그들은 그들대로 그리 마음 편치 않았으리라.

20여 년 전 일본에 갔을 때다. 아침부터 햄버거 집 앞에 줄을 선 것을 보고 의아했던 일, 또 관광지마다 긴 줄을 늘어선 그들을 보면서 인내심에 감탄하던 때가 있었다.

당연하듯 기다림에 익숙하던 그들의 밝은 표정에서 새삼 배웠던 일이 떠오른다.

제주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긴 줄에 섞여 한 참을 기다려서야 미술관 안으로 진입했다. 바깥에서의 1시간여의 기다림에 비하면 실내는 북적거리는 사람들에 치여 제대로 그림 감상이 되지 못했다. 워낙 한꺼번에 몰리는 시간대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림 제목도 발밑으로 달아놓아 사람사이를 비집고 들어서야 보였다.

미술 애호가가 많아서 인지 토요일이서인지 많은 이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이곳 미술관에 다 모인 듯하다. 아니면 혼신을 다한 화가의 열정, 그 절절함이 이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는지도.

사람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집중으로 쏘아주는 조명이 그나마 그림에 집중하게 했다. 그림마다 진솔함으로 살아 움직였고 그 끓어오름은 실내 분위기와 함께 열에 들뜨게 했다. 번잡함은 있었으나, 그럼에도 모두에게는 줄서기 이후의 상황이 자유로움을 만끽한 듯 했다. 줄을 서서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 긴 시간의 기다림이 간혹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없이 끌어 오르는 갈망과 자유에의 의지로 삶을 그려나간 한 인간의 영혼을 마주하는 데는 긴 시간의 줄서기여도 응당하다, 고 모두들 그렇게 생각 하는 것 같았다.

이렇듯 제 선을 지키는 일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줄서기란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는 전초라는 것을 느꼈던 때였다.

세상에서 줄을 서야 할 곳은 많다. 몇 번의 줄 바꾸기도 또는 건너뛰는 일도 있을 것이다. 순리대로 가는 길에서는 무한한 자유로움이 절로 스민 다는 것을. 그러나 빠르기와 느림의 시간차가 얼마나 큰 차이인지는 개인의 상황에 따를 것이다.

간혹 목적을 달성하기위한 줄서기도 본다. 지면에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의 이쪽과 저쪽의 줄바꾸기와 줄서기도.

민속놀이인 줄다리기나 고싸움놀이도 줄을 잡고서야 끌어당기거나 들어 올려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고리로 힘을 발휘 하는 것 그런 아름다움의 긴 줄의 위력.

이번 줄서기에서 엉뚱하게 그러 면모를 생각해 보았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데 보니 줄서기 한 사람들은 몇 배나 더 불어 있었다. 미술관 앞마당과 뒤쪽 터로 이어지는 이중 삼중의 늘어선 줄이 하나의 설치 예술을, 바로 행위 예술을 보여 주는 듯 했다. 그 사이를 걸어 나오는 우리 역시 행위 예술에 동참한 셈이다.

고흐를 직접 만나서 행복했고 정신 요양원에 갇혀 있으면서 더 자유로운 붓놀림에 가슴 뭉클한 시간이었다. 줄서기의 긴 기다림이란 구속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이뤄내는 가장 근본적인 자유의지임을 새삼 느껴 봤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