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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을 바라보며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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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01  17: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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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아침 창문을 비집고 얼굴을 내민다. 보고 싶고 그립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무척이나 반갑다. 며칠 겨울비가 주적주적 내려 마음이 착 가라앉은 터인데, 날씨에 따라 마음의 변화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면 자연생태계의 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는다.

 창문을 열었다. 창밖에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떨어진 낙엽들을 쓸어 담고 있다. 곱게 물들어 떨어진 낙엽들도 있지만, 세찬 바람에 찢겨 구멍이 숭숭한 것들도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다. 모자를 깊숙이 들이 쓰고 목도리로 단단하게 준비했지만, 빗자루를 든 손의 무게가 감당되지 않는 모습이다.

 낙엽을 보면 그렇게 낭만적이었다. 젊은 날 대학 캠퍼스 광장에 백양나무가 있었다. 가을이 지나 겨울로 접어들면 수북이 쌓인 노란 잎새들 둔치가 생겼다. 세 개의 산 모양을 한 예쁜 낙엽들을 주워 책갈피로 썼던 기억들이 시나브로 지나간다.

 나목, 세월이 익어감에 따라 떨어지는 낙엽보다 나목을 생각하게 된다. 아름이 벌게 큰 느티나무가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 채, 귓불이 따가울 정도로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임종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 아까워서 힘겹게 어깻숨을 내쉬며 남겨지는 가족과 친지들을 애처롭게 쳐다보는 것처럼, 가마니 속으로 쓸어 담는 자신의 일부분을 내려다보는 듯하다.

 나목의 일생이 어쩌면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빈 가슴만 열어젖혀 우두커니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집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보름달이 환히 비치던 외갓집 제삿날 밤, 집으로 돌아오던 고샅길에서 둘째 아들을 바라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주변에 나목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과 같이 드나 놓으나 하나뿐인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혹여나 한여름 태풍으로 찢겨서 떨어져 나간 잎사귀들도 생각하고 있을까. 겨울바람에 날리는 낙엽들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준비된 사별이겠지만, 외부의 환경에 의해 솜털도 벗지 못한 잎사귀들과의 이별에 대한 감정은 어떠했는지. 억장이 무너지고 온 천지가 새까맣게 보이는 세상에서 그리움은 이슬방울로 맺히고, 뼈를 긁어내는 아픔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야 하는 심정은 절망일 것이다.

 삶이란 자신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숭고한 계획에 의해 순응하는 것이 아닐까. 해가 뜨고 지는 것이라 알고 있었다. 아니다. 태양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지구가 나를 업고 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폭우가 내리는 날 하늘은 먹칠한 모습으로 보이나 하늘은 항상 파란색으로 존재한다는 것, 잠시 먹구름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사람이 보는 시각만이 전부가 아니다. 인간도 자연에 일부라는 것을 느껴야 한다. 새봄이 오면 또 다른 이파리들이 생겨나고 새 삶을 살아가는 나목처럼 인간 역시 새로운 생태계 일부분으로 살아간다. 낙엽을 함부로 밟지 말자. 그것들도 한 생을 살아온 기억 속에 한 조각들이다. 낙엽을 쓸어 담는 아파트 아주머니의 행동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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