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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실질법치주의 고사(枯死) 직전
백승주  |  C&C국토개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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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13  16: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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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이후 서양사회에서는 국회에 의한 입법, 사법부에 의한 재판 등 삼권분립이 자리잡으면서 시민의 대표기관이 합법적인 기관(의회)에서 만들어진 법률은 정당하고, 그러한 법에 따라 통수권자가 인민을 통치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극단적으로 집단의 이익만을 강조하는 정치세력, 즉 나치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 세력이 국회를 장악한 가운데서 제정된 법률이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유대인을 대학살하는 장면 등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런 사건들을 겪은 뒤 국회 제정 법률에 의한 통치형태로는 민주주의나 시민의 자유를 결코 지킬 수 없다는 뼈아픈 각성이 일었다. 단순히 환상적인 사람이 아닌 법만으로는 법에 의한 지배 내지 통치로서의 법치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국회 제정의 법률 중에서 정의(正義)가 조금도 추구되지 않는 법률이나 정의 개념의 핵을 이루는 평등(平等)원칙이 의도적으로 부정된 법률은 법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단순히 형식요건을 갖추고 있으나 그 내용이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을 만큼 나쁜 악법(惡法)’이 아니라 오히려 법으로서의 본질을 전혀 결여한 것으로 깨닫게 되었다. 합법성뿐만 아니라 정당성도 갖는 법률에 의한 법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실질적 법치주의 시대가 열렸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법률의 내용이 합법성 외에도 정당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제정 법률이 형식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법률의 실질적 내용이 정의를 실현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적합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공수처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권부의 의도와는 달리 공수처법에 대해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완성할 기회라고 말했다. 지난해 공수처법을 만들 때에는 정권 방패막이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국민과 야당으로부터의 우려가 나오자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특히 야당에 비토권을 주는 보완장치를 뒀다. 하지만 공수처가 출범해보지도 않고 상상 속에서 그 보완장치마저 없애버렸다.

진정으로 권력기관을 개혁하는 차원에서 공수처를 설치하는 것이라면 시간을 갖고 야당을 설득해서 합의 처리함이 옳다. 만들어 놓고 사용해보지도 않은 법을 개정하는 것부터 입맛대로 하겠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더구나 수사검사 자격조건을 턱없이 낮추는 조항을 개정안에 슬쩍 끼워 넣어 자기편 인물로 수사검사를 채우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도 드러났다.

그렇다고 뜻대로 연내 공수처가 출범할 것 같지도 않다. 수사검사를 뽑으려면 야당 추천 위원을 포함하는 인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수사검사 없는 공수처가 출범을 선언할 수 있다.

더욱이 문제는 공수처 설치의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정의를 실현하고 국민의 기본권 실현과도 직접적인 관련성이 부족하다. 그저 검찰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권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공수처를 설치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생각이다. 기본권 확대 보장보다는 정권의 안위를 위한 공수처 설치라는 비판 또한 예사롭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입법 내용상 문제가 많은 법안을 의회주의를 통한 토론과 축조심의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민주화를 이뤘다고 자부해온 실세들이 역설적으로 비민주적 행태로 밀어붙여 국회를 통과시켰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포기하려는 듯하다. 헌법에 의한 법치 실현보다는 법치를 파괴하는 법률 만능주의, 인치(人治)를 기도한 폭거와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실질적 법치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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