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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한라산은 녹음이 짙다. 몇 해전만해도 오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의 석굴암 가는 길은 주차장에 여유 공간이 많지 않을 정도로 주말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에게 인기 있는 산행 장소였다.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368개의 오름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수많은 오름 동호회가 생겨나고 올레의 개발로 올레꾼들이 등장하여 기호에 맞는 다양한 여가선용의 선택권이 주어지면서 등산객들을 분산시키는 작용을 한 것 같다.
한라산을 힘겹게 오르는 일보다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오름이나 올레길 탐방으로 등산객들과 관광객의 관심을 돌리게 한 것 이다. 그래서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일찍 가든 늦게 가든 여유로움 속에 조용한 산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무 뿌리들이 등산객의 증가에 따라 더욱 드러나 안타까움이 들곤 하였는데 나무 계단을 보강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석굴암 입구에는 나무 의자까지 놓아 지친 몸을 쉬게도 하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쉼터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다. 등산로 정비로 인하여 나무 뿌리도 보호하고 등산객들의 안전한 산행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연어처럼 인간에게도 회귀 본능이 찾아올 때가 있다. 고향을 떠나 살다가도 고향으로 되돌아 가고 싶어질 때가 있고 추억의 장소를 찾아 떠나고 싶을 때가 있기에 석굴암 가는 길이 정비를 마치고 나면 각광받는 산행장소로 옛 영광을 찾기를 기대해본다.
산은 한여름의 찜통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시원한 바람과 그늘을 제공하였다. 다양한 매미의 울음소리는 도시의 인공적인 소리들과는 다른 신선함을 준다. 매미소리는 자연스럽게 여름임을 일깨우지만 맑고 상쾌한 바람은 산만이 줄 수 있는 여름을 위한 선물처럼 느껴져 더없이 감사하다.
비탈에 선 나무들이 비탈에 선 채로 한 생을 견디고 있는 석굴암 가는 길은 종교를 떠나서 염원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처럼 느껴진다. 우리 삶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얽히고 설킨 뿌리의 모습을 통하여 삶을 뒤돌아 보게 한다. 저 뿌리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저 뿌리에 남아있는 상처에 관여하고 있다. 우리가 산행을 통하여 건강을 유지하고자 하는 일이나 휴식을 통하여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한 산행으로 뿌리를 드러나게 하는데 일조를 하였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쉬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워낙 많은 발길이 닿음으로 산길은 황폐해지고 깊은 시름을 토해내고 있었을 것이다.
비탈에 선 소나무 한 그루는 어느 겨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벼랑으로 쓰러져 버렸다. 어느 곳에 이르면 뿌리가 삼분의 이쯤 뽑히어 위태하게 누워 있는 소나무가 있다. 지금은 비탈에선 나무 몇 그루에 간신히 큰 몸을 의지하고 있지만 눈이 많이 오게 되면 언젠가 뿌리째 뽑혀 벼랑으로 내몰린 나무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애잔함이 든다. 이미 허공으로 내몰린 뿌리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어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 삶에 많은 부분과도 닮아 있다. 그렇다고 산행을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우리가 다니고 있는 이 숲길에서 나무의 고통을 이해한다면 나무뿌리를 밟는 일에 대하여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깊은 흙 속에 뿌리를 묻고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온 적 없는 나무뿌리에게 상처는 먼 나라 일처럼 여겨질 테지만 밟히고 밟히어 껍질이 벗겨진 뿌리에겐 흙 속에 파묻혀 상처를 입어보지 않은 또 다른 세상의 뿌리가 마냥 부러운 대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약간의 비가 오는데도 어리목을 통하여 산행을 감행한 일이 있었다. 숲길을 걷는 동안은 바람도 없고 우비도 입은 상태라 천천히 가랑비가 내리는 숲의 풍경을 감상하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숲을 막 벗어난 평지에 도착하자마자 산행을 포기해야 했다. 숲이 없는 평지에 엄청난 위력의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평화로워 보이던 숲 밖의 세상은 무법천지마냥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고 숲의 무성함이 온 몸으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무성한 숲일수록 다양한 식생이 분포하고 있다. 그 속에도 분명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비바람을 막고 있는 숲에는 그 모든 것들이 무리를 짓거나 단독으로든 그 숲을 지탱하고 유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래서 숲 밖의 세상에서 불어오는 풍파를 완화시키거나 막는 데에 힘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석굴암 가는 길은 즐거움만이 동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탈에선 나무들이 견디고 있는 세상만큼 나름의 슬픔이나 고통을 견디며 더 나은 내일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이나 나무나 한 생(生)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소금길도 되고 꽃길도 되는 그런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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