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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말뚝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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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2.03  17: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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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란다 창가에 내리는 눈비가 슬프다. 가로등 빛 사이로 군무를 치듯 날리는 하얀 눈발이 떨어지는 대지에는 비가 되어 흐른다. 사람의 냄새가 그리운 시간이다. 정겨운 얼굴들이 시나브로 지나가고 미워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 안의 담긴 향기 안에서 살아온 내가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하다. 대인관계가 단절된 사회 분위기는 어쩌면 외딴섬에 홀로 남겨진 듯 사람이 그립다. 집콕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슬에 매인 강아지처럼 그 둘레만을 맴돌고 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맴돌다가 달그락거리는 밥그릇에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훈련된 가축처럼.

 아프리카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이 어미 잃은 아기코끼리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마을 한복판에 나무 말뚝을 박아 목줄을 달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기코끼리를 너무 가련히 여겨 매일 코끼리가 좋아하는 풀과 물을 주며 클 때까지 기다렸다.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순수한 마음으로 아기 코끼리에 대한 정성이 대단했다. 마을 사람들과 코끼리는 한 가족처럼 눈짓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알았다. 코끼리 또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러던 중 원주민들은 성장한 코끼리를 야생으로 보내주기로 하고 목줄을 풀어주었다. 자신을 옭매고 있던 작은 말뚝을 의식한 코끼리는 자신의 영역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 뿐이다. 야생을 잃어버린 코끼리는 한낱 원주민들의 가축이 되어버린 것이다. 조그만 말뚝에 의해 거대한 코끼리의 본능은 사라졌다.

 바이러스에 멈춰 버린 사회는 아직도 짙은 어둠이다. 그러나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으로 일상을 고대하고 있다. 폐업하고 돌아서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눈물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미래를 기약하는 용기가 빛나고 있었다. 겨울 찬바람이 나목을 몰아세우고 잔가지가 윙윙 소리를 내며 언 손을 비빌 때도 줄기에서 피를 돌리는 나무의 심장 소리를 그들은 듣고 있다.

 삶이란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자유롭지는 못하더라도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일상이 있어야 한다.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은 방역의 기본이겠지만, 타인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역기능도 있다. 거리 두기는 지켜야 할 안전수칙이지 말뚝이 아니다. 경직함에서 유연함으로의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코끼리의 말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삭막한 나목에서 연록의 새순이 꿈틀거리는 것은 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보여주는 자연의 증표다. 봄과 함께 오는 바이러스 백신의 도입은 일상을 찾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불신이 만연했던 지난 일년 동안 잃어버린 소중한 관계성을 회복시키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혹독했던 시간 속에서 이웃들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았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이기주의적인 행태에서 벗어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복구작업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향약의 4대 덕목 중의 하나인 환난상휼의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도외시했던 민족의 도덕성 회복을 가져오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얼음을 녹이는 것은 따뜻한 햇빛이다. 사랑과 배려의 포근한 미소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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