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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자의 입학식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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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03  17: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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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은 말이 없다. 그래서 거짓을 말하지 않는가 보다. 일주일 전 텃밭에 뿌려놓은 열무 종자가 연녹색의 어린싹으로 보송보송 돋아났다. 아직은 한기가 있는 절기라서 며칠을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들은 세상을 빨리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뿌려놓은 공간에 푸름의 색으로 채워지는 텃밭에는 생명이 움튼다. 아직도 겨울잠에 빠져있는 대추나무와 감나무는 봄의 햇살을 느끼지 못하는 듯 미동도 없지만, 블루베리 나뭇가지에는 조그만 싹들이 눈을 비비며 살그머니 창문을 열고 있다. 자연 속에서의 시간은 어느새 희망의 봄을 알리고 있다. 지난해 잃어버린 봄을 기억이라도 하듯.

 어린 외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딸에게 대견스러움과 측은한 마음이 든다. 사위의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손자의 모습이 새로움을 창조하는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여덟 해 전, 분만실로 들어갈 때 울지 않겠다고 나를 안심시켰지만, 결국 출산의 아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창조는 아픔을 동반하는 눈물이 필요한 산물인가 보다. 어쩌면 삶은 삭막한 것이 아니라 늘 새로움의 시작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바이러스로 인해 입학식과 졸업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세대들의 아픈 기억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힘들게 살았던 우리들의 세대에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들어서던 추억이 남아있다. 처음으로 만나는 선생님과 낯선 아이들 속에 두려움과 반가움이 교차했던 초등학교 운동장, 고만고만한 아이들 속에 줄지어 서 있던 나의 모습을 아버지는 어떤 생각으로 쳐다보았을까. 늘그막에 낳은 아이가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는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으리라.

 입학식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을 따라 교실에 들어서자 나를 반긴 것은 나무로 된 조그만 책상과 걸상이었다. 책상을 밀어내고 걸상에 앉은 순간부터 학교생활은 시작되었고, 그것이 꿈과 희망의 첫걸음이라는 것도 모른 채.

 아버지는 운동장 한쪽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살짝 웃음을 띠며 나의 작은 손을 잡아주었다. 쟁기를 잡고 밀었던 아버지의 두툼한 손은 따뜻했다. 교문을 나서 상점으로 들어갔다. 국화빵 몇 개와 누런 종이 몇 장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런 종이는 크기에 맞게 낫으로 자르자 노트가 되었다. 사진 한 장 없는 초등학교 입학식은 기억의 언저리에서 찾아낼 뿐이다. 내가 성인이 된 다음 나의 아이들에게 입학과 졸업은 기쁨과 희망이라는 단어를 기억으로 남게 해주고 싶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주고, 국화빵 대신 경양식으로 축하의 기분을 내게 해주었다.

 외손자의 입학식은 간소했다. 각 교실에서 방송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학부모의 참관은 생략되었다. 바이러스는 동심의 기억에도 훼방을 놓고 있었다.

 학교에 간 아들을 기다리는 딸의 생각이 궁금하다. 날갯짓하는 둥지의 새들처럼 부모의 품에서 나와 세상 밖으로 나서는 아들의 발걸음을 위해 무한한 축하와 격려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블루베리의 새싹들처럼 희망과 꿈을 기도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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