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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피는 모과꽃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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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01  12: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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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꽃의 향연이다. 며칠 전 아파트 주차장을 가득 메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겨울왕국을 연상케 했다. 이파리가 나기 전에 피는 여린 꽃잎들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흔들거리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얄궂은 봄바람이 팔랑개비 짓을 하듯 정신을 흩어놓지만, 꽃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실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이리저리 몸을 맡기며 세상을 바라보는 꽃송이들은 맑고 깨끗한 눈동자를 가진 어린애와도 같았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밤새 불어닥친 비바람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앗아가 버렸다. 여린 잎들은 바람에 날려 힘없이 낯선 곳으로 흩어졌다. 연분홍 치마를 입은 여인의 슬픈 삶의 춤사위처럼. 벚꽃은 삭막한 도시를 잠깐 아름답게 치장하고는 떠나고 있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만나는 사람이 있듯 벚꽃과의 이별 뒤에 또 다른 꽃을 만났다.

모과꽃이다. 텃밭에 이십 년쯤 되어 보이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덩치만 컸지 바라던 모과 열매는 달리지 않았다. 여름날에는 텃밭에 그늘이 드리워져 채소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베란다에서 바라볼 때마다 밉상이다. 작년 가을 베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내의 빨랫줄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에 울타리 크기 정도로 가지치기했다. 수북이 쌓인 잘라낸 가지들을 정리하는데 모과 열매가 눈에 띄었다. 꽃도 없었고 열매도 보이지 않아 석녀인가 싶었는데, 서너 개의 열매를 보고서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홧김에 가지치기하는 동안 아픔을 감수하던 모과나무 떨림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쉽게 다가왔다.

그러던 모과나무에서 꽃을 본 것이다. 엉성한 가지 틈에 분홍색의 모습으로 송송 피었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가지마다 핑크빛이 감돌고 있다. 이사 오기 전에 있었던 나무였는데, 이제껏 모과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새롭다. 겨울 견디지 못해 죽어버린 삭정이 가지 틈에서 얼굴을 내밀어 나를 주시하고 있다.

창문을 열고 나가 쳐다보니 분홍색 입술을 가진 수줍은 여인의 모습이다. 벚꽃이 화사한 현대인의 모습이라면 모과꽃은 고전적인 자태를 지닌 한복의 여인이다. 마치 툇마루에서 글공부하는 아들의 모습을 안방에서 쳐다보는 사임당의 고귀한 분홍 저고리 모습이다.

꽃말이 아름답다. 평범, 유혹, 유일한 사랑이라고 한다. 소담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주는 모과꽃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런 모과나무를 왜 그리 학대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무릇 못생긴 사람을 비유하여 모과나무처럼 뒤틀려서 심술궂고 순수하지 못한 마음씨를 가졌다든가, 성격이 곧아서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사람에게 뒤틀린 모과나무 심사로 비딱하게만 본다는 말이 있다. 기준에 따른 선입견이다.

보이는 형체만 보고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 편협된 생각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남긴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처럼 따뜻하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색깔과 향은 좋으나 울퉁불퉁한 열매가 못 생겨서 분홍색의 소담한 꽃과 은은한 향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모과나무의 인생이 가련하다.

창가에 비친 모과꽃, 반쯤 열린 분홍 입술이 포개지면서 꽃말처럼 유혹이나 하듯 살포시 눈웃음을 보낸다. 봄 햇살은 들꽃을 내세우고 신선한 바람은 들꽃의 발을 깨운다. 지천으로 널브러지게 피어있는 봄꽃들, 봄은 꽃으로 물들고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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