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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나기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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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6.01  18: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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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년보다 여름이 일찍 찾아오는가 보다. 후덥지근하다. 한여름 초입 언저리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옷장 한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여름옷들을 깨워야 하고, 집 안의 것들도 더위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작년에 입었던 셔츠며 외출복들을 낡은 옷장에서 드러낼 때의 기분은 또 다른 여정을 생각하게 한다.

 후줄근한 장마의 터널을 지나면 한여름이다. 젊은 날, 낭만의 계절이었지만 열정이 사라진 지금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도 같다. 마치 메마른 사막을 이리저리 맴도는 도마뱀의 무겁고 지친 몸뚱어리처럼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풀잎 끝에 맺힌 아침이슬 방울 같은 육체, 출렁이는 바다의 물결과도 같이 한결같지 못한 마음을 가진 내가 아니던가.

 계절에 따라 옷을 몸에 걸친다는 것도 짐인 것 같다. 육신이라는 거죽을 보호해야 하는 사계절의 변화는 소싯적과 다름없지만, 나이 듦에 따라 무게가 더해감을 느낀다. 핸드폰이며 자동차 키, 지갑 그리고 일상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젊었을 때는 걱정거리가 될 수 없었던 것들이었는데 청춘의 갑옷을 벗고 나서야 보인다.

 산다는 것은 오늘의 짐을 지고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과정인가 보다.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삶의 무게가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항상 만나던 친구들, 보고 싶은 은인들과의 단절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현실이다. 보이지 않은 적에 대한 인간의 전략은 방역밖에 없다고 한다. 그게 쉬운 일인가. 적은 허술한 인간의 방어망을 뚫고 숨통을 조여왔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고, 바이러스와의 항쟁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일상의 마스크로 인해 아름다운 표정과 미소를, 비대면과 거리두기는 포근한 사람 냄새를 사라지게 했다. 장미꽃이 아름답다 하나 미소짓는 사람의 얼굴에 비할 바 못 되고, 라일락 향기가 향긋하다 하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가슴 떨림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잃는다는 것은 슬픔이며 소중하다고 했던 것들이 나에게서 떠나버린다는 것. 삶의 여정에서 단절과 절망을 느끼는 순간일 수도 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새날이라는 심장의 떨림으로 맞이하려고 자신을 토닥인다. 일상의 회복이다. 오랫동안 만남이 없던 이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 하지만 왕래 없던 숲길이 막히듯 대화의 통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혹시 그곳에는 많은 가시가 있고 그 가시로 서로를 찌르고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더욱이 가까이 갈수록 더 많은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조심조심 서로를 살피고 아끼고 이해하며 아프지 않게 말하고 양보하면 서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고슴도치들의 삶처럼.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일상은 사람 냄새가 풍기는 아름다움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돌돌돌 흐르는 개울물 소리, 쪼로롱거리는 산새소리, 푸른 하늘의 새털구름, 그늘진 숲길을 따라 스르르 내려가는 계곡의 물소리가 알토의 음을 내는 그곳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인근 마트에서 파닥거리는 생 자리를 사다가 구수한 된장에 오이와 미나리, 사과식초에 산초 잎을 담뿍 넣어 만든 자리물회를 그리운 이들과 먹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면 족할 것 같다. 자리물회의 배지근한 맛은 순수한 사람의 향이다. 일곱 번을 먹으면 한겨울 감기를 피할 수 있다 한다. 일상의 짐을 훌떡 내려놓고, 도담도담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곳이 쉼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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