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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어떵허젠 햄시니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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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8.31  17: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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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텃밭을 정리하다 왼손 엄지손가락이 다쳐 열 바늘을 꿰매야 했다. 오일장에서 벌초하기 위해 산 낫을 가지고 시들어가는 고추와 가지나물을 정리하다 순간의 방심으로 생긴 사고다. 손가락 중에서 엄지의 위력은 가장 작으면서도 기둥의 역할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다음 주에는 벌초도 해야 한다. 지나간 실수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걱정이다.

볕은 가라앉지 않았지만, 바람은 선선하다. 가을 초입에 든 벌초가 계절이 바뀜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병원 치료를 받고, 먼나무 가로수 그늘을 밟으며 돌아오는 시야에 편의점 그늘막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종교 생활을 함께하는 어른들, 커피나 한잔하고 가라는 말에 동석했다. 한 분은 췌장암 치료 중인 분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렸더니 백 세에 가까운 노모가 살아계셔서 먼저 갈 수는 없다면서 활짝 웃음을 보인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이란 죽음까지 초월하는 거룩함인가 보다.

벌초는 어떵허젠 햄시니,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르면 인원수가 제한 헌덴 ᄒᆞ영게?”어색해진 분위기를 눈치챈 친구분이 화제를 돌렸다. “겅해도 해야지. 조상들이 맹질 먹으러 오젠 ᄒᆞ민환자 같지 않은 단호한 어조다.

제주 사람들에 있어서 벌초는 효에 대한 의무인가 보다. 팔월 초하루 전 일요일은 벌초객들로 산야가 북적거린다. 제주의 후손들은 만사 제쳐두고 이날 만큼은 산소로 가야 한다. 윙윙거리는 예초기 소리에 잠자던 조상들의 귀를 열어 깨우며 봉분 속에서 오래된 먼지를 툭툭 터는 모습이 그려진다. 더부룩한 쑥대머리가 청순한 동자승처럼 되었을 때, 그들은 저승문을 열어 살아생전의 고향으로 뒷짐 지고 걸어가지 않을까.

생전의 아버지에게 이날은 일 년 중 가장 걱정스러운 날이었다. 새벽에 준비하고 나서면 길도 없는 목장 밭을 지나 정오가 되어야 도착하는 곳이다. 중문에서 금악까지 가는 걸음이었으니,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갈 형편이 못돼 혼자 걸어야 했다. 비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목장길을 걷다가 자욱한 안개로 길을 잃고는 벌초를 못 한 적이 있었다. 그해 일 년은 가슴에 못이 박힌 채로 살았다고 한다. 내가 중학생이 되어 동행하기 시작하자 그 힘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한 시간가량 봉분 정리를 마치고 나면 연초를 피워 물고 연기를 허공에 내뱉었다. 가느다란 실 모양의 연기는 죽은 이들의 방 산담을 넘어 두 개의 봉분을 휘돌아 산산이 흩어진다.

산자락 아래 조그만 마을이 희미하게 보였다. 돌아온 길을 가려는 늙은 아버지의 손을 이끌어 마을로 내려가 보니 지금의 상천마을, 산간마을이었지만 하루에 버스가 몇 차례 지난다고 한다. 한 시간쯤 기다리면 버스가 온다는 점방 아주머니의 말을 들었다. 버스를 타면 중문까지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는 말씀을 아버지께 드리자 거 참!”하며 사 홉짜리 소주를 주문했다. 술을 안다미로로 붓고는 연거푸 입안으로 털어놓았다. 부족한 듯 잔술마저 드시자 취기가 오른 아버지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비포장도로라 먼지를 뒤집어쓴 버스에 올라 집에 도착하자 깜짝 놀라던 어머니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늘 땅거미가 내려앉은 어둠과 함께 들어오던 아버지가 남은 해와 함께 왔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후 아버지의 벌초 짐은 솜털처럼 가벼웠다.

다시 찾아볼 수 없고 그냥 그리움으로만 남는 두 분, 벌초를 통해서나 볼 수 있는 부모의 모습이다. 그들은 저승에서 벌초는 어떵ᄒᆞ젠 햄시니?”하고 묻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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