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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온새미로 받아들였다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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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01  18: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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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2월인가. 달력을 보니 달랑 한 장. 신년 초, 기대에 부풀었던 열두 장의 무게감은 사라지고 왜소한 모습으로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한 해가 시작되면서 따스한 온정으로 품었던 기대와 희망은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했던가. 바이러스의 창궐로 TV를 통해 떠오르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던 순간들이 마치 어제의 일과 같이 시나브로 지나간다.

 지난 시간은 다사다난했다기보다 고장 난 시계와 같이 멈춰진 암흑의 질곡이었다. 바이러스의 창궐로 일상은 제한되었지만, 그 속에서 인간들의 자유분방한 삶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깨닫는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본다.

 김장철인가. 아내가 오일장 날을 물어본다. 시장에서 사다 먹는 것이 습관이 든 나는 괜한 일이라며 투정을 부렸다. 번거롭고 성가신 일을 왜 하느냐고. 언제부턴가 아내가 해주는 김치가 섞인 음식이 밥상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을 느꼈다. 속이 꽉 찬 배추포기를 다듬고 절인 다음, 갖가지 양념을 배춧속에 정성껏 끼워주고 비비는 작업이 고단한 노동이 아닐 수 없다. 아내는 떨어지는 한 조각의 배춧잎도 농부의 배인 땀이라며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양념 하나에도 조화가 있어야 색깔과 맛이 도드라진다며 세심하게 작업을 마쳐나간다.

 김장을 마치고는 푹 삶은 돼지고기 수육에 갓 담근 김장 배추를 손으로 사각사각 찢어내어 밥상에 올려놓는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자연의 단맛을 내는 배추와 양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와의 조합은 최고의 궁합이다. 김치는 담그는 집 안마다 그 맛이 다르다고 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여인들의 손맛에서 만들어내는 우리의 전통음식 중 하나다. 여인들은 어머니의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쪼개고 붙이고 하지 않고 온새미로 받아들였다.

 옛날, 선비들은 서당 뜰에 민들레를 심어놓고 삶의 지혜를 배웠다고 한다. 아무리 짓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나가는 끈질긴 생명력과 뿌리가 뽑혀도 땅에 심고 기다리면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교훈으로 삼았다.

 그리고 잎이 나는 순서에 따라 꽃대가 나와 피는 것을 보고 예의를, 꿀이 많아 벌과 나비가 찾아오면 꿀을 함께 나누어주는 미덕을, 잎이나 줄기에 젖과 같이 하얀 빛의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자애로움을 깨우쳤다. 또한, 민들레가 흰머리를 검게 해주는 회춘의 약재로 쓰이는 것을 보고 효도의 덕, 씨앗이 낙하산처럼 바람을 타고 멀리 낯선 곳에 가더라도 잘 적응하고 자라는 것을 보며 삶의 끈질김을 알았다고 한다. 얼마나 심오한 지혜의 깨우침인가.

 김장을 몸소 하고자 하는 아내의 의지를 알 것 같다. 시장에서 돈이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는 편리한 세상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그것이 부모의 세대뿐만 아니라 대대로 이어오는 선인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가 전통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반세기 동안 피와 땀으로 점철된 세대의 노력을 보수 꼴통으로 매도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것일까. 편협된 생각은 전체를 보지 못한다. 마치 편식하는 아이들과 같이 좋아하는 것만을 골라 먹다가 건강을 해치고 몸을 망가뜨리는 것과 같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가는 인생길에 소박하면서도 강인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듬어 주는 민들레와 같은 삶을 온새미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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