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집은 서울 변두리에 있는 조촐한 아파트다.

주변 미장원에서도 난방비 절약 차원에서 연탄난로를 설치하여 난방을 유지하는 동네다.

오랜만에 보는 연탄난로는 충격이지만,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라는 안도현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6∼70년대의 어머니의 냄새보다, 현대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끄러운 양심에 묘한 자극제로 다가온다.

고도의 문명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해택보다, 시간을 맞춰 연탄을 교체하는 미용실 원장의 상기된 얼굴에서 삶의 진실을 되찾게 된다. 아집과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아도 마음이 천국으로 변하는데, 과욕으로 똘똘 뭉쳐 일상의 지옥에서 헤매며 숨 가쁘게 살아왔으니 할 말이 없다.

소중한 단체-‘낭만파’클럽이 생각난다.

신앙생활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낭만파 클럽 슬로건’을 음미하며 삶의 방향을 설정할 때가 있다. 이 슬로건은

△따지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손해 본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사랑과 함께 정을 나눈다.

△조건 없이 서로를 돕는다.

△남의 말을 하지 않는다.

△문화와 예술, 스포츠를 사랑한다.

△가끔 멋도 부릴 줄 안다.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한다.

△다방면에 많은 지식을 습득한다.

△교제의 범위를 넓힌다.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다.

△위트와 유머감각을 사랑한다.

△상대방을 많이 칭찬한다.

△지갑을 보고 친구를 삼지 않는다.

△될 수 있는 한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다.

△혼자 있어도 늘 그 자체를 수용한다.

△선배를 존경하고 후배들을 아낀다.

현대인들의 지향점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슬로건이다.

한국영상자료원 정홍택 이사장은 “가진 것은 많지 않더라도, 마음이 항상 넉넉하며 멋을 아는 사람들의 단체”라며 낭만파클럽을 결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 슬로건에 매혹되어 나도 낭만파클럽 회원이 되었지만, 요즘은 시대 탓인지 그 모임이 어려운 실정이다.

낭만적으로 정신을 순화시키던 사람들도 경쟁사회에 휘말려 치열하게 몰두하고, 타인을 앞서려고 애를 쓰며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때로는 느슨하게 바보처럼 살아가는 여유를 참으로 아름답게 생각했다. 할머니께 들었던 설화들을 아이들에게 얘기해 주고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젊은이들을 온화하게 선도하는 차원에서의 낭만파클럽 자체를 ‘고도화된 문화단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낭만에 대한 향수가 더욱더 그립다.

그러나 다행히 미용실의 연탄 냄새와 타인에게 배려하기 위해 자기를 산화시킨 연탄재에서 삶의 참맛을 느끼고 있다. 낭만파들의 슬로건만큼은 못하더라도, 인간의 참 모습, 인간의 진실한 형체가 보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