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4·3희생자와 유족들의 호적 불일치 실태조사가 시행돼 그 결과와 원인분석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22일 제주4·3교육센터에서 열린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 모습.

[제주신문=전아람 기자]

 “아버지 밑에 놔주는 게 소원입니다”라며 한 어르신이 흐느꼈다.

 북촌리 이순열씨는 1948년 음력 9.29일 아침에 태어났는데 같은 날 저녁 궤에 숨었다가 도망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후 어머니는 재가했고, 이씨는 작은 아버지 호적에 큰딸로 올라가면서 1952년생이 됐다.

 이씨는 아버지의 제사와 벌초를 계속해오고 있는데 15년전 묘 이장 과정에서 아버지 유해와 할머니 유해와 섞였는지 유전자 검사에서 '완전 일치'라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4·3희생자 보상의 길이 열렸지만 가족특례 조항이 4·3특별법 개정과정서 제외돼 이같이 안타까운 사정으로 유족으로 인정받지 사례들의 실태보고자리가 마련됐다.

 22일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제주4·3희생자유족회 주최로 열린 ‘제주4·3사건으로 인한 호적불일치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에서 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지난 8월 19일부터 100일간 실시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1940년대생 유족 1세대에서 불일치 경향이 두드러졌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불일치 사례가 많았는데 이는 부계전승 전통속에서 딸이 호적에 뒤늦게 업적됐던 상황으로 풀이됐다.

 조사 대상자들의 호적 불일치 주요 원인은 희생자와의 혼인문제와 사후 배우자의 재혼여부가 주된 이유가 됐다. 4·3 이전보다는 이후에 호적 불일치 사례가 많긴 했지만 대부분 제주4·3을 전후한 행정체계의 혼란함과 높은 영아 사망률로 출생신고 시기를 유보하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실질 가족관계가 기록상에 남기가 어려웠던 상황 때문으로 분석됐다. 또한 당시 호적 관계 결정권한을 부계가족이 갖던 관습, 연좌제도 이유로 지목됐다.

▲ 친자관계가 입증되지 못했다는 이순열씨가 실태조사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현 연구원은 호적 일치를 이룰 수 있는 법적 정정방법이 존재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고, 불일치한 기존 가족관계등록부를 폐기하고 신규 등록까지 2차례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복잡함, 이미 3,4세대까지 사회적 관계가 형성돼 이를 번복하는 과정에서 가족 정체성 혼란을 야기하는 어려움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조사대상자들 가운데 호적 정정을 시도한 비율이 61.5%에 달했지만 친자 확인용 DNA 검사의 부담과 높은 비용, 친인척간 이해관계 대립, 파묘를 꺼리는 분위기로 대다수가 중도 포기해 성공하지 못했다.

 현 연구원은 이들이 유족에 등재되지 못한 박탈감, 상속상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호적불일치 사례의 전수 파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다른 과거사 조사와 상호 연계, 국내 과거사 관련 사건 중 유전자 검사 외 방법으로 친족관계를 인정받은 사례를 파악하는 것도 방법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