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오피니언제주칼럼
나르키소스, 수선화
김구하  |  수필가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02.03  17:26:2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설이 지난 창밖은 아직 차갑다. 동장군의 시퍼런 눈살이 주변을 맴돌지만, 그 기세는 많이 꺾여 있다. 봄의 전령사라고 하는 입춘.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입춘을 기점으로 봄소식이 들려온다는 것이다. 곧이어 매화가 피고 눈 속에서 복수초가 노란 꽃잎을 열고 고개를 내미는 날도 멀지 않았다.

 변함이 없는 것은 계절의 순환인가 보다. 바이러스에게 빼앗긴 동토의 일상 속에서도 봄이 온다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는 희망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정원 한구석에 노란 수선화가 꽃망울을 내밀고 있다. 토종보다는 크기가 작지만 괜찮은 종이라 해서 작년 이맘때 알뿌리로 심었다. 작은 꽃밭이 눈길을 사로잡아 꽃을 찾아드는 나비처럼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던 것이 한겨울을 이겨내며 싹을 틔우고 긴 꽃줄기가 나와 흰색·노란색의 꽃으로 피웠다. 남들은 아직 잠든 한밤중인데 무엇하러 이리 일찍 나왔을까.

 수선화, 속명은 나르시스. 그리스 신화 중에 나타나는 나르키소스라는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강의 신 케피소스와 물의 요정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나르키소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요정들의 구애를 받았다. 하지만 나르키소스의 자존심은 누구의 사랑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사냥에 지친 나르키소스가 더위와 갈증에 쫓겨 샘가로 왔다. 그는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구부리다가 수면에 비친 제 모습을 보았다. 샘 안에 사는 아름다운 요정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여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나르키소스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물속에 비친 자신에게 수없이 입을 맞추고 껴안고자 두 손을 담그지만 그럴 때마다 물속의 형상은 흐트러진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여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죽은 자리에 노란 작은 꽃, 수선화가 피어났다. 꽃말은 자기 사랑, 자아도취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참 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 찬바람이 나목을 몰아세우고 잔가지가 윙윙 소리를 내며 하얀 눈으로 덮인 동토를 뚫고 나와 피어나는 꽃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매정할 수가 있을까. 혹여나 자기 용모나 재능을 과대하게 평가하여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을 비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인간들의 품격을 꽃을 통해서 표현되는 재치는 가히 예술적이다. 직설적인 표현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비견하여 사람의 성격을 우회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과연 어떨까.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기 자신의 우월함을 내세우는 것이 현실이다. 대선을 앞둔 요즘 사회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적 사명감은 찾아볼 수가 없고, 정권수호와 정권 획득이라는 당권싸움만 보인다. 국민을 위한 진정한 공약이 아니라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험한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더욱이 희떠운 말을 많이 하는 정치인들의 생리를 보면 피곤하다. 남을 비방하고 이간질하는 행태는 결코 국민통합을 이룰 수가 없다. 어쩌면 나르키소스의 맹목적인 자기 사랑과 다를 것이 없다. 만약, 요정 에코의 사랑 고백을 받아들였다면 나르키소스는 요정의 저주로 인한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보다 높은 산은 없다라는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행복의 꽃밭이다. 정치인들은 네거티브를 멈추고 상대 후보를 존중하는 가운데 국민을 축제의 정원으로 초대해야 할 것이다. 정원에 핀 수선화! 봄은 우리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고충처리인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63113)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공로 9-1(도두일동)  |  대표전화 : 064)744-7220  |  팩스 : 064)744-7226
법인명: ㈜제주신문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제주 아 01014   |  등록일 : 2007년 10월 24일  |  대표이사:부임춘  |   발행인:부임춘
편집인:전아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아람
Copyright 2011 제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ejupress@jejupre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