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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그리고 그리움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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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01  16: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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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기운이 따스하다. 봄의 햇살인가. 한겨울 움츠렸던 마음에 다가오는 포근함, 창문 밖 팔랑개비 짓을 하며 살랑거리는 봄바람은 겨우내 닫혔던 마음의 단추를 풀어놓듯 외출을 유혹하고 있다.

바이러스로 답답한 일상을 훌훌 털어낼 심사로 중문으로 향했다. 중문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삶의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뜸한 걸음이었다. 살던 고향길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옛길을 따라가는 길목은 그 길이 아니다. 골목길은 승용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는 아스팔트로 포장돼 있고, 지인들이 살았던 초가집들은 온데간데없다.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이 비가 내린 다음 날 천둥같이 밀려오는 백구 내의 웅장함을 가슴 내리며 바라봤던 팽나무 동산은 사라지고 쓰레기 분리 수거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인의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곳은 초등학교 시절 동네 우물로 사용했던 통물이 아닌가. 공동수도가 들어오기 전 동네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땅을 파고 돌담을 쌓아 만든 수원지였다.

기억을 더듬거리며 사위를 둘러 본다. 추억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나에게 소중한 삶의 자리였기에 지금의 현실을 지우고 싶었다. 유년시절의 모습으로 찾아 나서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긴가민가하며 희뿌연 기억 속에 찾아낸 것은 백구 내로 가는 조그만 길에 우람했던 팽나무들이다. 마치 임종을 앞둔 노인의 휑한 모습으로 남은 줄기들은 삭정이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이 떠나버린 자리에서 외로이 긴 세월을 어떻게 지냈을까.

팽나무의 그늘을 지나면 물장구를 치던 냇가가 있다. 봄볕은 따뜻해서 고향의 품을 느낄 수가 있다는 기대감으로 냇가에 섰다. 실바람이 콧등을 스치며 지나간다. 이 무렵이면 햇볕이 좋은 물가에 찬바람을 맞으며 꽃을 피우는 버들강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물가에서 보드라운 은빛의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는 버들강아지의 자태는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속에 환하고 따스함을 주었었다. 어린 강아지의 꼬리를 닮은 짧고 고운 털로 덥힌 모양의 꽃, 가지를 따라 핀 모습이 여간 앙증스럽지 않았다. 가느다란 줄기의 하늘거리는 모습이 젊은 여인이 교태를 부리는 것과 비유되어 집안에는 심지 않는 나무지만 사춘기 시절 가슴에 남은 나무다.

옛길을 따라 물가로 내려갔다. 아직도 그곳에 흰 꼬리를 내밀고 살랑거리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렇게 넓게 보였던 물은 도랑물로 남아 물장구를 치던 아이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 많던 냇가의 나무들은 잘려나가고 바위들은 쪼개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냇가 위에 거대한 모습으로 서 있는 다리를 세우면서 주변을 파헤쳐버린 모양이다. 그뿐인가. 소달구지를 끌고 오르락내리락했던 고샅길도 막히고 새로 건축된 주택들로 냇가는 초라한 웅덩이가 되어버렸다.

고요했던 유년시절의 추억은 적막함으로 검게 색칠되었다. 간간이 사스레피나무와 예덕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어릴 적 버들강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괜한 발걸음이었다. 내가 고향을 떠난 다음 그들도 함께 떠났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가난했던 부모님의 삶을 되 물림 받고 싶지 않았던 내가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같이 따뜻한 봄볕이 그리운 날, 버들가지가 하늘거리는 마을 냇가에 손을 담가보고 싶었던 소박한 생각은 분수에 넘친 교만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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