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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한애리 기자] 침팬지가 얼굴을 내밀어 눈을 깜빡이고 물속 생물체가 기다란 몸통을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 오른다.
물 속에서 놀던 수달인지, 풀 숲에 있던 공룡인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주위를 능청스럽게 살피고 집을 찾아 가던 토끼는 인기척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사진 속 동물찾기가 꽤 재밌다. 오랜만에 숨은그림 찾기를 하듯 가볍고 즐겁게 찾아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18일부터 아트인명도암에서 열리고 있는 정요택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 ‘헬로 프렌즈(Hello Friends)’.
이번에 정 작가가 펼쳐놓는 사진은 1년 전 우연히 재활용 회사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철판 위에서 아기돼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녹이 슬고 긁힌 상처로 남은 세월의 흔적 속에서 천진난만하게 뛰놀고 있는 생물체는 또 다른 세상과 통하는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작가는 그때부터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들고 과수원 입구 창고의 문, 건축자재로 쓰이는 H빔, 철재 펜스, 기름을 운반하는 탱크로리, 축사 안 철판, 화물용 컨테이너 등을 찾아다녔다. 철재 표면에 살고있는 동물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김춘수의 시(詩)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처럼 녹슨 철판 위에 의도없이 남겨진 흉터는 정 작가의 시선으로 다시 의미를 찾고 존재의 생명력을 얻었다.
정 작가가 그렇게 만난 동물친구들이 20여 점의 프레임 속에 남아 이번 전시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는 어느 만화에 등장한 주인공이 모험길에서 만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처럼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작가는 오랜 시간의 흐름과 그에 상응하는 흔적, 생명의 소중함을 상기시킨다.
정 작가는 “다해가는 철에 나타난 그림같은 표면을 바라보며 점점 사라져 가는 동물 친구들의 모습, 또는 이미 멸종되어 버린 공룡의 모습을 통해 생명에 대한 소중함 또한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문의 010-2252-6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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