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들은 푸르다. 연녹색의 새순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듯 평화롭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진달래의 자태는 고전 여성들의 붉은 한복과 같아서 가슴에 쏙 다가온다. 왜 다른 꽃들처럼 이파리를 내고 천천히 꽃을 피워도 되지 않겠냐고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괜한 이방인의 쓸데없는 질문에 답을 해둘 턱도 없을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한겨울을 견디어낸 꽃들의 속을 어찌 알 수가 있을까. 순수한 자연의 경이로운 풍경 속에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꽃잎을 맡겨 벌새와 나비들을 기다리는 듯 사방을 기웃거리고 있는 꽃들. 당신 할 일이나 하라는 듯 나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 그들만의 열린 공간에서 내가 들어갈 틈은 없어 보인다.

　문득, 휴식 같은 여유로운 시간을 자적하기 위해 들로 나섰다. 언젠가 고향 친구들을 초대했을 때 엉겅퀴의 뿌리를 술에 담가 뒀다가 내놓은 적이 있다. 짙은 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서 무슨 양주냐고 물어보던 친구가 생각났다.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진 엉겅퀴는 피를 멈추게 하고 엉키게 하는 풀이라는 뜻으로 국화과의 풀이다. 가시나물의 이름으로 불리는 식물로 꽃은 자줏빛이고 잎과 줄기에 가시가 숭숭 나 있어 사람들은 물론 짐승들도 피해 다니는 풀이기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풀이다.

　그래서인가. 엉겅퀴는 인간에게 쉽게 허락하지 않으면서 주고 싶은 것들이 많은 식물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성질이 평하고 맛은 쓰지만, 독이 없고 어혈을 풀어주어 출혈이 멈춘다고 했다. 줄기를 자르면 우유처럼 하얀 진액이 나오기 때문에 밀크씨슬이라고 이름으로 불리는데, 강력한 항산화 성분인 실리마린이 주성분으로 함유되어 간 영양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술을 가까이하는 나에게 특효약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녹색의 새순을 내는 엉겅퀴를 삽으로 팠다. 깊게 뻗어있는 뿌리는 온전하지 않았다. 이미 새순을 내기 위해 자신의 양분을 쏟아버렸기에 쭈글쭈글한 모습이다. 늦었다. 3월경에 캐었던 알뿌리가 아니다. 마치 부화를 앞둔 달걀처럼 깊고 갈라진 알뿌리 빈틈에는 영양분이 가득 찬 검은 흙이 자리하고 있었다.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이 알뿌리에서 새로운 뿌리가 자라고 있었다. 새 뿌리가 그것을 먹고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식물들 또한 빈틈을 창조의 공간으로 남겨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빈틈은 자기희생이었다.

　사람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지니면서 채움을 기다리는 빈틈이 있다. 빈틈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의 창구라고 본다. 하지만 요즘 도시 생활에서 쉽게 틈을 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짓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속으로는 인정하면서도 함부로 표현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질병인 것 같다.

　삶의 자리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공통된 특권이다. 누군가와 소통하며 새로운 일상을 꿈꾸며 희망과 기쁨이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행복을 향해 찾아가는 여정이 아닌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지인을 만났을 때 그리움의 회포를,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과 만남 속에서 풍기는 싱그러움은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기쁨이라도 본다. 살아간다는 것은 마음을 열고 상대방과의 접촉에서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는 존중과 나눔의 공간이다. 열린 공간의 자연에서 치유의 해법을 찾아봄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