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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불러내다”…‘시로 봄을 여는 서귀포’ 관람기
강정만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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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2.26  16: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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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만 편집국장

 서귀포에 봄은 이렇게 왔다. 사육제(謝肉祭)처럼 혹은 불꽃놀이처럼 요란할 것이다. 시인은  ‘야위어진 봄바람 돌담에게/달려가 돌담이 된다’(이승익 ‘영춘시’)라고 이미 노래했다. 남녘의 생명들이 온통, 마침내 늘 무엇을 기다리는 듯 태고의 말없는 돌담까지, 눈 지긋이 감고 연정(戀情)을 싣고온 서귀포의 봄에  바람나서 환장할 것이다. 

 그래서 서귀포이다. 이화여자보통고등학교를 나온 송민도(宋旻道·1923년생)가 1958년 ‘서귀포의 사랑’이라는 노래로 ‘서귀포라 슬픔인가’라고 긴 탄식을 쏟아냈다. 

 

 “초록바다 물결위에 황혼이 오면/사랑에 지고 새는 서귀포라 슬픔인가/임떠난 부두에 울며불며 새울 때/칠십리 밤 하늘에 푸른별도 슬피운다//그리워도 보고파도 아득한 바다/물새도 울며 새는 서귀포라 눈물인가/동백꽃 향기에 휘감기는 옛 추억/칠십리 해안선에 서리서리 서린다.”
 

 한국전쟁 피난시절을 지나며 서귀포는 애닯은 사연의 고장이었던가?  가슴을 후벼오는 노래의 처연함에 떨리며, 슬프고도 서러워 하늘을 쳐다보다 문득 봄이 왔음을 알아차렸다. 봄이야! 봄. 

 서귀포가 낳은 걸출한 두 시인이 봄날의 찬연한 ‘서귀포’를 노래했다. 송민도의 노래가 애잔한 선율이었다면 이 두 시인의 노래는 바이올린을 타고 은은하게 울리는 찬가다. 천진스런 동심의 봄날과 서귀포와 파도소리에 귤꽃 흐드러져 누군가가 그리운, 그런 노래를 부른다. 김광협과 한기팔이다. 

 “5월달 서귀포 유자꽃 핀 밤에는 /마을 하나에 그냥 등불이 되니까 /똑닥선도 등(燈)을 켜지 않고 지난다/유자꽃 핀 마을에서는 姜小泉/이를 읽었는데 姜小泉이는 지금 /그 마을에 가 영원히 쉬고 있을지/몰라.”<서귀포/김광협>

 
 강소천(동화작가)을 읽으며 유자꽃 핀 밤 멀리 섶섬과 새섬과 문섬과 범섬을 지나는 배를 바라보는 시인의 동심은 시인이 떠나가버린 지금도 서귀포에 살고 있을 터이다. 시인은 아직도 유자꽃이 핀 마을을 쏘다니며 뛰어 놀고 있는 아이다. 한 폭의 ‘수채화 속’에서  강소천의 동화를 읽으며 순진무구함(동심)’이 영원히 제 속에 머물러 있기를 갈망했던 시인의 봄은 오늘도 저만치서 달려와 서귀포를 포옹하고 입맞춤 한다.

 
 “마당귀에/바람을 놓고/귤꽃/흐드러져/하얀 날/파도소리 들으며 긴 편지를 쓴다.”/<서귀포 한기팔>
 

 텃밭에 심은 감귤나무에 하얀 꽃이 피었다. 귤꽃이 핀 것으로 봐 아마도 늦은 봄이다. 바다를 넘어 파도에 실려온 온 바람은 귤꽃을 흔들어 하얀 송이를 날리는데, 시인은 봄이 ‘바람을 놓았다’고 주장한다. 

 바람이 분 것이 아니라 봄이 바람을 ‘초대했다’. 봄 바람이 마당귀로  왔고 뒤이어 파도소리가 동반되었다. 시인은 바람에 실려온 파도소리, 흐드러진 귤꽃이 연주해 내는 세레나데에 혹해 있다. 문득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누구나 그럴것이다. 봄의 연가(戀歌)는 당신에게도 회한이며 그리움일 것이니.

 그 대상은 아득한 첫사랑일지도, 아니면 동화속에서 읽었던 ‘성냥팔이 소녀’일지도, 혹은 지금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랑일지도 모르지만. 시인은 그 누군가에게 분명 ‘긴 사연의 편지’를 쓴다고 했으니 썼을 것이다. 교통사고로 자신에게 불어 닥친 운명을 탓할 겨를 없이 저승과 이승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시인은, 그 편지를 보내 놓고 답장은 받았는지, 궁금해 물어보고 싶은데 말이 없다. 

 봄을 동면에서 깨어난 곰으로 환유한 시인이 있다. ‘기러기’라는 시로 익히 알려진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  ‘봄’이다.
 

 “어딘가에서/검은 곰/잠에서 막 깨어나/산아래를/내려다 보네/이른 봄/밤새도록/ 얄팍한 불안이 기승을 부릴 때//(...) 차가운 물에 닿는/불꽃 같은 그 혀/질문은 오직 하나 뿐//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인가(…)온종일 나는 곰을 생각해…/그 흰 이빨,/그 말없음,/그 완전한 사랑.” <기러기/마음산책(2022) 106쪽>

 
 봄은 근육질로, 흰 이빨을 드러내며 오는 모양이다. 맹렬하다. 수줍은듯 오는 봄처녀 아니었나? 말없이, 아니 봄이 오는데, 봄이 바로 모든 생명,’ 그것인데  무슨 군더더기가 필요하랴!  한동안 동면에서 깨어난 곰은, 아니 봄은 다음의 겨울까지 세상을 누비며 ‘완전한 사랑’을 이룰 것이다.  풀과 꽃과 나무와 돌담들마져 저마다의 은밀하고도 농염한 사랑을 서로 벌써 꿰어냈다.
 
 올리버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인가”를 물었다. 시인의 ‘우물 파기’는 이 철학적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김광협, 한기팔처럼. 봄을 불러낸 서귀포 시인의 시가 이봄 우리 서로를 위로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할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서귀포의 시인은 사랑을 품어나르는 메신저다.

 25일, 서귀포문협이 ‘시로 봄을 여는 서귀포’ 축제를  24번째로 치렀다. 이름이 아름답다. ‘시로 봄을 여는 서귀포’. 참가한 시인들의 시에서 깊은 울림이 자맥질 하며 솟아올라 가슴 속으로 닿았다. 서귀포 시인만이 들려 줄 수 있는 멜로디였다. 쌀쌀한 날씨를 비집고 올라온 고향의 봄빛을 맞으며 감상을 할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하다. 

 다만, 축제가 ‘친목회 야유회’ 수준에 머물렀다. 내빈소개, 정치인의 축사는 구식이다. 봄 맞이 문인행사에는 ‘저(底) 품격’이라는 중평에 동의한다. 장소, 현수막을 비롯한 무대, 참가인원, 시간 등 축제 업그레이드를 위한 문협 집행부의 분발이 필요하다는 감상평이 단하에서 활발했음을 함께 전한다. (추기: 김광협·한기팔 시인의 시 두편은 서귀포 문상금 시인의 자료협조를 얻어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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