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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 친구!” 오승철 시인을 고별하며
강정만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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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5.21  17: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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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만 편집국장

 시대는 칙칙했으나, 실한 삶이었다. 우리 거의 모두 그랬듯 모진 세월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 보다도, 윗 학교로 진학하는 것 보다도, 밭에가서 농사일을 돕거나,  바다에 가서 ‘개닦이’를 하거나였다. 생계를 잇기위한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나 관계 없었다. 그 혼자서 그 특유의 뱃심으로 문학의 밭에 시를 갈고 그것을 거뒀다. ‘빵’이 되지 않을 터인데도, 처연한 고독과 외로움의 자궁안에 시의 알을 품었다. 
 
 스물 다섯. 마침내 우리나라 메이저 일간지의 신춘문예에 당선(1981년)되고, 언제나 캄캄하고 절망적일 것만 같았던 둥지를 안에서 쪼아 나와 날개를 퍼덕거렸다. 그리고 40여년. 오직 시를 쓰고, 시를 읽고, 시를 전파하고, 시를 키우는데만 그의 모든 것을 바쳤다.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그의 바다에 유영하던 시어들을 건져내 시의 성전에 올렸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했다. 바다는 그의 시의 자궁이었다. 그가 그 바다에 경의를 표한 뜻이, 아! 그 최종 ‘보은의 의례’였다는 것을 깨닫고 내 눈가가 축축해졌다.

 
 “저 텅빈 바다에 무엇을 바칠까 하다가 그냥 거수경례나 하고 돌아갑니다.”<오승철 시조집,다 떠난 바다에 경례/‘시인의 말’/황금알(2023)>
 
 그의 시조를 볼 때마다 느꼈다. “곱고, 서럽고, 외롭고…(박진임)”가 행간마다 달라 붙었다.  그의 시는 늘 내 사유를 관통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그가 낸 호젓한 오솔길에 서있는 나를. 나는 그가 내준 길을 가면서 인생의 무한한 사랑, 연민, 우정, 용서를 사유한다. 
 
 저녁무렵 은은하게 울렸던 내 고향 언덕배기 교회의 종소리를, 내가 우울했을 때 나는 ‘그가 내준 길’에서 들었다. 자애의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의 그 합창을, 나는 ‘그가 내준 길’에서 들었다. 초원의 어린 들짐승의 어미찾는 울음소리를, 나는 ‘그가 내준 길’에서 들을 수 밖에 없었고, 헤매던 먼길에서 마침내 어미품에 안기는 꿈을 꿨다.  
 
 등단 후 인연이 닿아 나와 친구를 한 그는, 나이로는 나보다 조금 아래지만 시(문학)에서는 나의 선배였다. 그는 언제는 고독하게 때로는 우울하게 보였지만 시는 내 삶을 관조하게 하며, 늘 ‘부족한 듯 만족’하게했다. 범접하여 가까이 갈 수록 고요하게 사람을 되돌아보게 하는 마력을 뿜었다.
 
 그를 염탐하고 나서 줄곧 생각해오기를, 나는 늘 그의 편에서 증인이 될 계획이었다. 내가 문학이라는 산에 미처 대지못했으나, 문학의 법정에 세워진다면, 시 또한 알고있기를 땡추중의 독경 몇 줄에 불과할 것이나, 그의 시의 법정에서는 그의 증언이 될 참이었다. 그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늘 그의 곧고 아름다웠던 삶과 인생을 떠올리며 그의 증인이 될터였다. 

 67세다. 인간의 욕망이 그어낸 결승지점의 새끼줄은 100세에 매어졌는데, 신의 시샘이 바로 보인다. 신은 늘 공평하지 않았으며, 시인에게는 더욱 그러했거늘, 다만, 신을 탓할 겨를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일기(一期)가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이 되어 버렸다. 그가 더 오래 글을 쓸수 있었다면 하는 오늘 나의 아쉬움이, 그를 아끼는 시인들 그리고 문인들 그대 모두의 슬픔에 어찌 빗대랴만! 

 그의 스승 한기팔 시인이 이야기 한다. 제자를 대놓고 칭찬하기가 민망했을 스승 시인은 그 제자를 ‘선한 눈’이라고 해 놓고는 더 이상 부연하지 않았다. 시인은 다만 시로 그의 진심을 나타낼뿐이니. 이 노시인은 깊은 병상에서  제자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것을 모른다. 그는 어디에선가  “선생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 스승이 그를 ‘쇠테우리’로 칭했다. 잠시 ‘윗세오름 산장(山莊)에서, 쇠테우리’라는 시를 읽어보자. 
 
 “오승철 시인(詩人)은/ 쇠고기는 못 먹는다 했다/아니, 안 먹는다 했다/ 그 선한 눈/ 시(詩)의 들판에서/ 풀을 뜯는/ 그가/ 진정 소이기 때문이다./아니 쇠테우리이기 때문이다/”<한기팔시집 겨울삽화/ 황금알(2023) 52쪽> 
 
 우리시대 ‘쇠테우리’가 떠났다. 들판에 풀을 뜯는 소들을 남겨놓고 저 혼자 훨훨 날아 그의 고향 위미리 앞바다 올랑캐와 동백숲으로 내달았다. 그곳에 가면 또 다른 들판에 그의 소들이 풀을 뜯고 있을 것인가? ‘선한 눈’의 쇠테우리로 살다간 그대, 시인이여!
 
 그는 문학이라는 망망대해에, 제주에서 특히 시와 소설과 에세이만이 위풍을 드러내고 있을 때 시조의 항해길을 만들어 무릅썼다. 그는 시조와 시의 바다가 와류하는 지점을 만들어 경계를 허물고, 수많은 시조 거작(巨作)의 산파역을 자임했다. 쇠테우리라는 은유 말고 하나 더 붙인다면, 시조를 시의 층위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했던 로망의 ‘어부’라는 이름도 그리 난데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 덕분에 독자인 나는 시조와 시를 무람없이 감상하게 되었다. 
 
 나는 그의 시가 있기에 안도에 이르렀다. 사전처럼 펼쳐볼 그의 시가 내곁에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의 별세 소식을 들은 아침, 사제는 ‘그의 시가 비로소 너와 함께 하며 너를 인도할 것”이라는 신탁을 전해줬다. 그러므로 사람들이여! 그의 시로 상여를 메고 슬픔에 젖어있는 사람들이여! 그대들도 마음을 놓으라! 그의 정말 맛나는 시, 영혼을 달래주는 시가 영원을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니. 
 
 “잘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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