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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좋다. 시를 읽고 새겨보는 게 좋다. 잘모르기는 하지만, 좋아해서 틈틈이 좋은 시는 외워
서 친구들 앞에서 읊기도 한다. 난해한 시를 만나면 뭐가 뭔지 좀 그렇고, 읽기 쉽고 가슴에 확 와닿는 시를 만나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은 것 같이 가슴 설레며 탐독(耽讀)에 빠진다.
서귀포 토박이 시인 문상금의 일곱 번 째 시집이 필자를 그렇게 꼬셨다. 걸출했던 제주도의 화가 변시지 화백의 그림과 함께 엮은 시화집이다. 읽기 쉽고 가슴에 확 와 닿는, 그런 시였다, ‘가슴에 확 와닿는 시’라고 했지만, “문상금의 시에서는 아무래도 ‘회한’ ‘연민’ ‘애수’ 이런 것이 확 와 닿는다”로 고쳐 쓰겠다.
필자는 여러 ‘선수’들이 모여든 ‘해석’의 경기장에는 비록 ‘가담(街談)’일지라도 참여시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마이너’ 라인에 서서 겨우 출장(出場)해 보는 필자의 이 글이, 가늠도 안되는 허접스러운 잡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속에서도, 또 ‘시를 잘 모른다’고 하면서도 용기를 낸 것은 저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의 허용을 전제로, 필자가 문상금의 시를 이야기 한다면 먼저 ‘비감(悲感)’으로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같다. ‘비정(悲情)’이라고 ‘ 꼭 하고 싶은데 사전에는 이런 단어가 없다.
“따로/살아가는 법을/배운다//따로/그리워하는 법을 배운다// 흰등뼈 유독 높은 날//눈을 떠도/눈을 감아도// 흰물결/출렁일수록 돌아눕는/ 성산포” <’성산포’/時志, 시대의 빛과 바람에 뜻을 새기다/서귀포시 서홍동주민센터(2023) 54쪽>
시인은 성산포에 가서 파도치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서, 자신의 가슴 속 ‘무엇’을 파도로 치환했다. 그 무엇이란 아마도 그리움, 외로움 따위, 불쑥불쑥 우리의 기억의 울타리를 맴돌다 어느날은 일제히 기습해 오는 잠자던 ‘뜨거운 영혼’. 시인은 이를 삭여보기 위해 성산포 바다를 찾아갔을 듯하다.
그래서 마주한 바다. 하지만 그것들은 등뼈처럼 솟아 오르고 내리며, 흰물결이 되어 출렁이고, 허전함과 고적함은 더 높게 일렁인다. 야속하게도 외면까지 당한다. 끝내 ‘성산포’는 이렇게 시인에게 통보하고 만다. “나도 너의 그 마음을 어쩔 수 없구나! 시인이여 더 외로워져라! 그 끝에서야 너의 회한은 사랑으로 다시 환생할 터이니…”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회한이야말로 문학의 근본 감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사랑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운명에 의해서, 또 한번은 나에 의해서. 사랑했던 사람을 두 번 죽여본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한겨레출판(2022) 76쪽>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한 둘이랴! 회한을 달고 사는 사람이 어디 그대 뿐이랴! 운명에 의해서든, 나에 의해서든 당신은 사랑을 몇 번 죽여봤는가요? 문상금 시인도 필경, 이 회한을 안고 사는 사람일 것이다.왜냐? 시인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어쩌다 ‘운명적’으로 이별 하고, 다시, 그를 못 잊어 매일 매일 그 ‘사랑을 죽이는’ 그런 방황, 절망까지. 시인은 ‘성산포’ 바다를 찾아갔다가 사랑했던 이를 그곳에 남기고 돌아와버렸을 터이다. 그래서 그는 시인인 것이다.
시인은 1992년 ‘심상’지로 등단한 중견이다.그동안 상재한 시집이 이것까지 무려 7권이다. 시인의 열정은 양적인 것에서 눈길이 멈추지만, 그의 끌끝으로 조상(彫像)되어 생명을 얻은, 아름답고도 자주 슬픈 시어들은 사색의 창을 활짝 열어놓는다.
그의 시를 읽으며 필자는 그것들이 떠다니는 풀밭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서 돌베개 하여 구름 몇조각 떠다니는 하늘을 보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깊이 가라앉았다가 드디어 그 심연에서 일제히 올라오는 짙은 ‘우수’가 있다. 그 언어의 다채가 욕망하는 것은 필자에게서도 그리움이며 외로움이며, 못잊는 ‘그 첫사랑’ 같은 것이다. 최소한.
“나뭇가지의 새는// 물가의 너처럼/ 산 그림자처럼//하루에 한번씩/마을로 내려온다// 빙둘러보고/다시 깊은 산속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툭 털어진 깃털 하나/ 흔적하나” <’외로움’/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있기 때문이다/(2009) 32쪽>
이 지독한 외로움을 어찌할까? 새가 날아가버린 자리에 남은 깃털 하나.그 온기까지 느껴지는 생생한 ‘사랑의 자취’ 또는 흔적. 그것을 보며 떨리고 있을 시인이 선명하다. 그 깊이를 필자의 어쭙잖은 필경(筆耕)으로 다 일궈낼 수 없음이 안타깝다.
“우리 동백꽃으로/ 만나자// 하논 어디쯤/ 붉은 동백꽃으로/만나자//(,,,)동백숲을/ 붉게 물들이다/ 뚝뚝 떨어져 뒹굴지라도// 그함께 하였던 소중함은/ 사라지지 않듯이/ 또 다시 우리/ 붉은 속울음으로 만나자”<’붉은 동백꽃으로 만나자’/첫사랑/한그루(2020) 86쪽>
붉은 속울음으로 만나자니? 이건 그리움이 아니라 북받치는 서러움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으로 하여 서러움은 이미 서러움이 아니다. 이 속에 꽁꽁 감췄지만 어떤 ‘기대’의 은유다. 그 대상이 사랑하게 될 사람이든, 신이든.
시로써 소설로써, 산문으로써, 아니면 한 줄의 ’댓글’ 같은 편지글에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글을 보는것은, 필자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수사가 아니다. 요즘 문상금의 시집을 읽었고, 위로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신탁’을 전해도 될 초로(初老)의 여로에서 한마디 덧붙인다면, 이제 시인의 시가 ‘비감’의 껍질을 벗어내는 고통의 시간을 맞이할 때가 아닌가 한다. 깊이 박혀 있는 회한의 옹이는 그것대로 놔둔채, 시인의 삶을 관통해왔을 ‘사랑과 연민’ 같은 것들을 특유의 시어로 변주시킨다면 ‘문상금의 시 읽기’는 더 깊은 사유속으로 안내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시인이 숙명처럼 씨름하고 있는 ‘비(悲)’의 시어들을 해방시켜주는 데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귀중한 시집을 보내주신데 대해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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