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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0년 3월 6일, 서울 창덕궁에는 일본 교토로 향하는 통신사의 발대식이 있었다.
정사에는 서인 황윤길(黃允吉)이, 부사에는 동인 김성일(金誠一)이 서장관(書狀官)에는 허성(許筬)이 임명되어 막 일본을 통일한 최고실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침략을 탐지할 목적으로 출발하였다.
통신사 일행은 일본에 도착한 후 수개월을 기다린 뒤에야 간신히 히데요시를 만나 모욕적인 면담을 하고, 이듬해 1591년 1월 28일에 부산포에 상륙한다. 3월, 통신사 일행은 대소신료가 모인 어전에서 조선의 운명을 가른 상반된 보고를 올린다.
정사 황윤길은 "일본이 머지않아 곧 쳐들어 올 것이라!" 보고했다. 선조의 안색이 변했다. 그러자 부사 김성일은 "침략의 징조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황윤길이 공연히 침소봉대하여 민심을 동요시킨다!"고 전혀 상반된 견해를 내놓는다.
선조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이어 서장관인 허성에게 물어보자 허성은 동인임에도 황윤길과 같은 견해를 내놓는다.
2:1이었음에도 선조는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신하들에게 전쟁이 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논쟁에 붙였다. 신하들 사이에 자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선조 때의 동서붕당은 선조에 의해 조장이 되어졌다는 것이 역사의 상식이다. 선조는 붕당정치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갔다. 어느 한편이 기운다 싶으면 반대편을 숙청해 힘의 균형을 유지시켜 주어 자신에게 절대 충성하도록 유도했다.
선조는 두 파벌에게 히데요시의 인물 됨됨이를 물어 보았다. 황윤길이 ‘히데요시가 비록 외모는 볼품없으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고 맨주먹으로 일본천하를 통일한 인물론’을 펴자, 김성일은 ‘사람이 될려다가 못된 원숭이에 불과하다고 외모론’을 펴자 선조의 표정이 또다시 밝아졌다.
선조는 사실에 맞는 보고를 선택하지 않고, 항시 자기 취향에 맞는 보고만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통탄할 사실은 통신사가 가지고 온 히데요시의 국서에 명백히 조선을 침공(정명가도)하겠다는 글이 박혀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구태여 신하들에게 말싸움을 붙여 자신은 모든 책임으로부터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전쟁은 상대국의 최고실력자가 일으킴에도 자신의 신하에게 가부를 물어보는 선조의 자상함은 결국 7년 전쟁(임진왜란)을 불러 일으켰고, 선조는 한 달도 못돼 의주로 몽진을 가야 했으며, 삼천리금수강산은 피로 물들고 백성은 어육이 되었다.
전쟁 후 전체 인구의 2/3가 일본군에게 도륙을 당했고,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도 귀나 코가 베어져야 했다. 그때 베어간 이총(耳塚)과 비총(鼻塚)이 지금도 교토의 도요쿠니(豊國神寺)에 남아 치욕의 역사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있다.
전쟁이 나기 전 핏줄로는 일본에 더 가깝지만 지리적으로 조선에 더 가까워 여러 가지로 조선의 은혜를 입고 있던 대마도주가 전쟁을 막고자 수차례에 걸쳐 전쟁의 위험을 알리고 대비를 당부했음에도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 막무가내 식으로 상대편을 얕잡아보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조선은 유교라는 마약에 깊이 중독이 되어 있었다.
전쟁은 유교적 명분론이 아닌 "힘의 논리" 즉 약육강식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에도, "내가 잘못한 것이 없으므로 절대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황당무계한 논리로 눈앞의 위험을 부정했다. 그들은 창검이 뱃가죽을 뚫고 들어오고 눈앞에서 아내와 어린 딸이 적에게 능욕을 당해야만 비로소 실체를 인정했다.
그때 만약 바다의 이순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리나라는 없을 것이다.
전쟁은 상대편의 적장이 일으키는 것이다. 적장이 전쟁포고문을 보내면 그것이 전쟁의 시작이다. 이쪽에서는 즉시 전쟁준비에 들어가면 된다.
김정일은 전쟁포고문을 연평도에 보냈다. 대통령은 결정하는 자리이지, 물어 보는 자리가 아니다. 몰라서 물어보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그런 정도는 동네 통반장도 할 수 있다.
대통령은 결정해야하는 고독한 자리이다.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지난 11월 23일 북한의 해안포가 서해에 위치한 우리나라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가해 해병 두 명이 전사하고, 민간이 두 명이 사망했으며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연평도 사건이 일어난 지 오늘로서13일 지났다.
언제까지 "한번만 더 했다간.."하는 식으로는 절대 북괴를 이길 수 없다. 가까운 시일 내에 틀림없이 유사한 사건이 또 일어 날 것이다. 선조는 물어보다 삼천리금수강산을 피로 물들였다. <신진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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