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오피니언제주에세이
시인의 라이터 낙관
문상금  |  시인/칼럼니스트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3.07.24  18:02:5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낙관이라 함은 불멸의 점 하나, 방점과 같은 것이다. 낙성관지의 줄임말이며 마무리하는 의미로 서화의 한 귀퉁이에 작가의 이름을 쓰고 글이나 인장을 찍는 작업이다. 일부분이면서 가장 중요한 구심점이고 작품의 전체 분위기와 조화가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야만 한다. 결국 주도면밀히 아주 선명하게 잘 찍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 이름이나 아호를 넣어서 훌륭한 재질의 나무나 돌로 정성스럽게 새긴 낙관 서너 개쯤 만들어 상자에 따로 보관을 한다. 때에 따라 요긴하고 필수적으로 그것들은 쓰인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상상할 수 없는 순발력 있는 낙관이 쓰이기도 한다.

 
 1992년 여름이었다. 그 해 6월 박목월시인이 창간한 심상지로 갓 등단할 무렵이었다. 하루는 “자리물회 먹으러 오라”는 기별에 몇몇이 달려갔는데, 아윤 한기팔 시인과 김광협 시인이 허름한 식당에 앉아 자리물회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소주를 그것도 됫병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때가 김광협 시인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잠깐 본 것이었다. 서귀포 고향에 내려오실 때마다 “시원한 자리물회나 한 그릇 허게 마씸”하고 아윤선생한테 전화가 오신다는 얘기는 자주 들었지만, 이렇게 바로 눈앞에서 그것도 건강이 안 좋아서 토평 부모님 집에 요양 차 내려오셨는데도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서 들이키는 모습이 정말 돌하르방처럼 듬직하였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한번은 ‘서귀포문학회’에서 일호광장 동쪽 지하다방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회원들이 각기 시화 한 점이나 두 점을 출품하였는데, 특별히 김광협 시인도 두 점을 출품해주셨다. 시화전에 참여하게는 되었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작품만 보내왔다. 여러 준비로 정신없이 분주하였는데 그 누군가 “저기 저 김광협 시인 낙관은 무슨 건고 양?”하는 것이었다. 시화를 떼어내어 이리저리 살펴보니, 왼쪽 맨 아랫부분에 둥근 원이 두 줄로 가지런히 찍혀 있었다. 전시회 내내 도통 무슨 낙관인지를 몰랐는데, 누군가 기어코 김광협 시인께 여쭈어본 모양이었다. “라이터 낙관이랜 햄수다, 시화는 준비하였는데, 마땅히 찍을 낙관이 없어서 담배 피우던 라이터에 인주 듬뿍 묻혀서 콱 찍었댄 햄수다” 한바탕 떠들썩하게 웃었다.
 
 누구도 생각 못할 그 기발한 라이터 낙관이라니, 거침없는 기질을 지닌 시인에 대한 이끌림이라고나 할까, 시화 내리는 날 그 굵고 투박한 시화 한 점을 요청하여 소중히 잘 소장하고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였는데, 그것도 인연이랄까, ‘유자꽃 피는 마을’ 불멸의 시가 유독 마음에 닿았다. 열심히 암송하여 ‘김광협 문학제’나 ‘숨비소리 시낭송회’ 등 여러 행사할 때마다 수십 차례 낭송을 하곤 한다.
 
 갑작스런 부고 소식에 몇몇이 모여들었다. 짧은 삼일장이었고 서울에서 비행기로 운구되어 고향으로 내려온다 하였고 모두 어쩔 줄 몰라 할 때, “한 열다섯 명 이상만 모인덴 허민...” 아윤 선생의 흐린 말씀 끝에 “제가 전 회원들께 전화 돌리고 참석 약속 받도록 하겠습니다”고 말했다.  퍼붓는 빗속에서 만사 제쳐두고 네 시간 이상을 전화기를 붙들고 집으로 직장으로 간절하게 돌리고 돌렸다. 그 당시만 해도 회원도 많지 않았고 통화 연결이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운 시절이었다. 오후 네 시쯤 중간보고를 올렸다.“현재 열세 명 참석 약속 하였수다” “되었다, 다들 서둘러 준비들 허주” 그렇게 퍼붓는 빗속을 뛰어다니며 밤을 새워 추도사를 쓰고 현수막과 조화를 준비하고 장례준비를 하였다. 1993년 7월 7일 호근리 학수바위 옆 선영에 서귀포문학사 최초로 서귀포문학회장으로 엄수될 때, ‘유자꽃 피는 마을’을 직접 낭송하여 떠나보내 드렸다. 이 또한 얼마나 깊은 인연인가.
 
 ‘내 소년의 마을엔/유자꽃이 하이얗게 피더이다~/내 소년도 오롯 잠이 들면/보오보오 연락선의 노래조차도 갈매기들의 나래에 묻어/이 마을에 오더이다~‘(유자꽃 피는 마을’ 일부분)
 
 꼭 삼십년이 흘렀다. 유자꽃이 눈처럼 휘날리던 김광협 소년이 뛰놀던 마을엔 매년 봄이 돌아오면 유자꽃이 무더기로 피고 진다. 긴 머리의 이십대 시인도 이제는 흰 머리의 중견시인이 되어서 툇마루 위에 유자 꽃잎인 듯 백발의 조모처럼 졸고 있다. 서귀포항구에서 간혹 뱃고동 소리가 들려올 때면 그 진한 유자향이 폴폴 풍겨오고 사나흘 지독하게 퍼붓던 장맛비속의 장례식이 기억나고 ‘첫사랑’ ‘강설기’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황소와 탱크’ ‘천파만파’ 등의 굵직한 시들이 떠오른다. 이 세상 인연이라 하는 것은 한낱 라이터 낙관으로도 오는 것이다.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고충처리인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63113)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공로 9-1(도두일동)  |  대표전화 : 064)744-7220  |  팩스 : 064)744-7226
법인명: ㈜제주신문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제주 아 01014   |  등록일 : 2007년 10월 24일  |  대표이사:전아람  |   발행인:전아람
편집인:전아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아람
Copyright 2011 제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ejupress@jejupre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