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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핀 ‘젤라의 꽃’…나기철 시를 읽고
강정만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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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03  14: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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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기철 시의 애독자다. 언제부터냐고 물으실지 모르겠다.  나기철 시인의 시집을 읽은 후 부터다. 시집을 읽었다고 애독자가 모두 되지 않는다. 시집을 읽고 그 시에 빠진 사람만이 그렇게 된다. 
 
 나는 나기철 시인의 시를 직접 읽고 감상하기 전까지는 시인의 시를,  무심코 부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듯 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대든  말든, 그것은 ‘바람과 나무의 문제’라는 내 특유의 못된 ‘냉소’가 있었다. 

 
 어느날 지인이 나에게 나기철 시인을 아느냐고, 시를 읽어 봤느냐고 물었다. 나는 지면이기는 하나, 시는  읽어보지 않았다고 했고, 그는  “시가 읽을수록 좋더라”고 하며 아래의 시집 세권을 빌려줬다. 나기철에 대한 호기심 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심심파적으로  들이 댔다. 
 
 <올레끝(2010)> <젤라의 꽃(2014)> <지금도 낭낭히(2018)> 이다. 이 세권을 독파한 나는 나기철 시가 좋은 시라는 여러사람의 평에 동의했고, <젤라의 꽃> 뒤편에 나온 한 평론가의 해설을 두 번 읽었다. 그리고는 애독자가 되었다. 
 
 나기철의 시는 우선 짧다. 간결하다. 다음은 ‘젤라의 꽃’에 나오는 ‘월요일(31쪽)’이라는 시다.
  
 ‘오는 길/비 많이 오면// 숲 터널에 들려/ 비좀/털고 오세요// 제게 오늘은/여전히/ 일요일입니다’  어떤가,  짧으나 의미있는 시 아닌가? 
 
 이 책 평자의 해석을 읽자. “월요일이다. 젤라가 오는 날이다.그런데 비만 오고 젤라는 오지 않는다. 시인은 젤라를 향해 빨리 오라고 재촉하지 않고, 오는 길에 비가 많이 오면 숲 터널에 들려 비를 좀 털고 오라고 말한다. 그 순간 시인은 기다림의 능동적 주체가 된다.(...) 이어서, 시인은 젤라를 향해 오늘은 여전히 일요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대가 아직 오직 않았으니 오늘은 월요일이 아니다’라고 말라는 것이기도 하고, ‘나는 오늘이 일요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대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의 감각을 되살리는 간결한 아름다음/현순영(문학평론가)』<젤라의 꽃/ 나기철 시집/ 서정시학(2014) 96쪽>
 
 이런 간결한 시 쓰기가 나기철과 몇몇 시인들이 난해한 한국시의 ‘쿠데타’를 위해 ‘작당’해서 만든 ‘한국시의 변신’이라는 것을 알고는 나는 무릎을 쳤다. “옳거니 그러면 그렇지!”  나는 긴 시, 어려운 산문시는 읽다가 도중 포기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앞 평자는 <젤라 의 꽃>에서 또 이렇게 적고 있다. “나기철은 간결한 시에 대한 지향을 네 번째 시집 ‘올레 끝’의 시들을 쓸 즈음부터 본격화 하기 시작했다.”<위책 115쪽>
 
 나는 특히 <젤라의 꽃>을 여러번 읽었다. <젤라의 꽃><지금도 낭낭히>는 시인이 아닌 인간 ‘나기철의 서사’가 일부 기록된 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나의 표현이 적절한지, 시인에 대한 비례가 아닌지는 뒤로 밀려두고, 나는 시인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념하며 쓴 시에서 외롭고 쓸쓸했던 청소년기의 방황과 연민을 읽어냈다. 그 인생 전체의 ‘주제’가 되는 ‘풍찬노숙’은 그가 쓸쓸하게, 한편 슬프게 연주한  모정(母情)의 비창곡(悲愴曲)으로   드러난다. 
 
 나기철 시에서 시인의 ‘인간’을 읽고 마침내 나는 시인의 시를 찾아 읽는 독자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유종호 선생은 <시란 무엇인가, 경험의 시학(2022)>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말과 글은 사람이다. 그리고 시를 읽는 것은 말과 글과 사람을 아는 길이다. 단 하나의 길은 아니지만 하나의 중요하고 매력 있는 길인 것만은 분명하다.” < 31쪽>
 
 <젤라의 꽃>에서 그 꽃이 실재한다고 생각해 그것을 찾느라고 한동안 헤맸다. 웹 사전을 찾아봐도 없고, 답답한 나머지 시인과 터놓고 지내는 지인을 통해 물어봐 달라고 했다. 상상의 꽃이라는 답을 들었다. 
 
 “머리위에/화관처럼 나타난/꽃// 며칠의 적막끝에/ 화요일에 온/꽃// 며칠이면 지고/다시 며칠 적막할// 젤라의 꽃<젤라의 꽃 2>을 읽고는 아 이게 시인의 마음속의, 또는 사유 속에서 피고 지는 ‘꽃’임을 알아냈다. 작고한 시인의 모친은 젤라의 꽃으로 피어났다. 며칠 사이에 졌다가 다시 피어 난다.
 
 70대가 된 시인의 시를 대하고 역시 같은 세월을 함께 거쳐온 내 가슴이 먹먹하더라는 말을 먼저 해두고 싶다. 덧붙여 기억이 가물가물한 해질녘 어느날 길거리 조우, 혹 모른채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의 무례였다. 막걸리 사발을 부딪치며 그의 시를 더 듣고 싶은데, 택일만 남았다. 서툴고도 방자한 나의 시 해석은 토달일이 부지기수다. ‘형틀에 매달아도 시원치 않을’ 내 어설픈 시읽기가 낯부끄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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