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오피니언제주에세이
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문상금  |  시인/칼럼니스트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3.09.18  17:08:3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초가을 땡볕에 독기가 서렸다. 멀구슬나무 평상에 앉아 땀을 식히노라니,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려온다. 덥다고 그러는 것일까, 좋다고 지저귀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살이 지독하다고 투덜대는 것일까? 최근 마음속 비밀의 말은 ‘비가 오면 비를 맞아라, 햇볕이 반짝이면 햇볕을 맞아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를 매일 암송하곤 한다. 
 
 새소리 사이로 뾰족 분홍꽃이 고개 내밀었다. 아아, 강렬한 땡볕이 하나도 안 두렵다는 듯이 화사하게 피어난 그 꽃은 바로 단심계 우리나라꽃 무궁화였다. 우리집 안마당에는 무궁화 세 그루가 심어져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숱한 꽃들이 피고진다. 흰 무궁화 그리고 노란 무궁화인 멸종위기식물 황근 외에 수많은 무궁화가 있지만 나는 일편단심 꽃잎 속은 짙붉고 꽃잎 밖은 연분홍인 단심계 무궁화를 제일 아끼고 사랑한다.

 
 수년전 같은 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하셨던 현재는 서홍동 노인회장을 맡고 계신 김충만 선생과 봉사활동 뒤 끝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무궁화 보급을 수십 년째 하고 계시다는 거였다. 그것도 자비로, 감귤나무 농장 한 쪽에 수백그루 키우시다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달려가 보급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저희 집에도 두세 그루 심어도 될까요? 피고 지는 꽃들을 바라보며 시를 써보려 합니다” 하였더니, 내일 당장 세 그루 준비하고 갖다 주신다는 것이었다. “저희 집은 올레가 길어서 찾을 수 있을까요?” 하였더니, “잘 알고 말구, 할아버지, 아버지 대부터 전부 잘 알아서, 집에 수저 몇 벌 있는 것까지 다 잘 알고 있지, 암!”하셨다.
 
 이튿날 새벽 잠결에 무슨 툭하고 무거운 소리가 나서 내다보았더니, 벌써 무궁화 세 그루를 흙 자루 속에 단단히 여미고 또 비닐봉지에는 따로 비료까지 넣어서 대문 앞에 놓고 가신 것이었다. 정말 그 지극정성에 깜짝 놀랐다. 앞마당 구석진 곳에 심었더니, 뿌리 잘 뻗고 잎 무성해져서 매년 여름이면 수많은 꽃들이 피고 지곤 하였다. 그 꽃을 바라보며 약속대로 ‘무궁화’라는 시를 썼다.
 
 ‘내가 꿈을 꿀 때마다/꽃을 피우는구나/단심으로 향하는 마음의 뜰엔/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푸른 꿈을 안고 나아갈 때/꽃들은 피고 또 피어난다/꽃잎만큼이나/짙은 꿈도 환하게 피어난다/ ‘무궁화’ 시 일부분
 
 일 년 후쯤 이중섭 거주지에 살고 계신 김순복 할머니의 자제분이신 경생 선생과 대화를 하다가 그 무궁화 꽃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곳 거주지에도 무궁화를 심으면 더 환해지고 방문객들에게도 여러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무궁화 심으면 참 보기 좋지” 당장 김충만 선생께 연락하였더니, 며칠 후에 손수 갖고 이중섭 거주지에 내려오신 것이었다. 정말 그 정성과 열정이 순식간이라, ‘나라사랑’ ‘무궁화 보급 운동’을 하실 수 있는 거구나,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 이중섭 표지석 좌우로 한 그루씩 심어주었더니, 듬직한 장승처럼 잘도 자라났다. 이중섭 화가는 날이 갈수록 명성이 높아갈 것이고 두 그루의 무궁화도 더 한층 빛이 날 것이다.
 
 여름철부터 가을까지 별 다양한 꽃이 없을 때 무궁화를 집에서 또 이중섭 거주지에서 볼 수 있어서 참 뿌듯하고 기뻤다.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 한다’는 얘기처럼 다함이 없고 매일 새로운 꽃이 연속적으로 피어나는 그 질긴 생명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네 번째 창작시집이 ‘꽃에 미친 여자’ 일만큼 봄여름가을겨울 밤낮 피고 지는 숱한 꽃들을 무한히 사랑하여 그 울긋불긋한 꽃들을 보러 참 많이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피고 지며 꽃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아름다웠다. 무궁화도 질 때 토종 동백꽃처럼 툭 떨어졌는데, 그 형태나 느낌은 사뭇 달랐다. 활짝 피어났다가 나뭇가지에서부터 꽃잎들은 조금씩 누에고치처럼 시들고 말라갔는데 새벽이면 잔뜩 주름진 형태로 그러나 한 점도 흐트러짐 없이 툭하고 떨어졌다. 그 떨어진 꽃을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만져보고 있노라면 세밀하고 농익은 연륜이 느껴졌다. 모진 삶을 살아왔던 여든 살 상군 해녀 할머니의 거칠고 강인한 손마디와 얼굴 주름살처럼 위대하였다. 또는 봄여름가을겨울 한파와 열대야를 겪으며 나이테의 흔적을 남기는 한라산 중턱의 나무처럼 경건하였다. ‘참 치열하게도 살아왔구나’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꽃잎으로 얼굴을 비벼주었다.
 
 ‘그래, 열정을 꽃피워야지, 그래, 열심히 시의 꽃을 피워야지, 그래, 일어서야지’ 끊임없이 피고 지고 또 잎과 가지가 무성하게 잘 자라는 그 강인한 생명력, 인내, 근면을 꽃을 통하여 배우고 마음을 다지게 되는 것이다. 
 
 때로 꽃이나 꽃잎 하나로도 이처럼 세상을 온통 설레고 화사하게 뒤덮을 수 있는 것이다.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고충처리인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63113)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공로 9-1(도두일동)  |  대표전화 : 064)744-7220  |  팩스 : 064)744-7226
법인명: ㈜제주신문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제주 아 01014   |  등록일 : 2007년 10월 24일  |  대표이사:부임춘  |   발행인:부임춘
편집인:부임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아람
Copyright 2011 제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ejupress@jejupre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