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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거나 나누거나
강순복  |  동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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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21  16: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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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 거실의 벽을 등지고 앉아 멍하니 맞은편 벽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음이 왔다. 거실 벽면을 빙 돌아가면서 ㄷ자로 가득 채워진 책장에 책들과 각종 상패와 감사패들을 보며 학자도 아니면서 너무 많은 책과 줄지어 놓인 각종 기념, 상패들이 다 무슨 소용이랴? 이 나이 되면 살아 온 행적으로 평가되어야지 저 패들로 나를 평가하게 해서야 될 말인가? 일부러 모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어느 사이에 책이 내 삶의 일정 부분을 저리도 빽빽이 차지하고 있었다니, 비우자.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지라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영혼을 그분이 취해가신다면 남겨진 저 많은 책과 온갖 패들은 누가 정리할 것인가라는 생각에 미치자 아찔한 현기증이 생겼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육체를 가진 탓에 벌써 하늘로 가도 이상하지 않은 나의 생명이 이날까지 이어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연구대상이라는 주치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참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 오늘이 저 많은 책과 물품들을 정리하고 떠나라고 덤으로 주는 하루는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정리하자. 어차피 저 책들을 두었다가 다시 읽지도 못하는데, 날마다 우편함에 쌓이는 책들도 미처 다 읽지 못하면서. 이건 부질없는 욕심이라는 생각으로 정리하기로 작정했다.
 
 우선 내가 발간한 개인 책들을 추려 따로 분류했다. 시집은 모임이나 교회 갈 때 차에 싣고 가서 어디든 풀어 놓으면 필요한 분들이 가져갈 것이고, 책꽂이 한두 칸을 차지하던 명상음악 시디도 싣고 나갔다. 원하는 분은 마음대로 가져가시라며 시집을 차에서 풀어 작은 도서관 앞에 놓으니 순식간에 책과 CD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친한 후배 아버지께서 운동 삼아 폐지를 모은다고 하니 연락처를 받아서 전화하고 집 동 호수를 알려드렸다. 책을 실어 가시라고.
 
 추리고 추리다 봐도 생각한 만큼 책이 줄어들지 않아 내 개인 책과 중요한 시집만 남기고 눈 딱 감고 모든 책꽂이를 비우기로 했다. 후배 아버지께서 책을 담을 컨테이너를 갖고 오셨길래 한쪽 벽면 책꽂이를 가리키며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실어 가세요. 했더니 놀라신다. 책을 담으시던 아버지께서 이건 새 책인데 라며 한쪽으로 밀어 놓으시길래 아니요, 하며 일단 닥치는 대로 담아내었다. 그날 작은 트럭이긴 하지만 그 파란색 트럭으로 세 차를 실어 가셨다. 상패들까지 다 쓸어 담으셨다. 잠시 후에 싣고 가신 책을 팔려고 보니 한 번도 걷어 보지 않은 새 책이 많은데 볼 책을 버린 게 아닌가 싶어서 도로 갖고 왔다며 두어 상자를 다시 싣고 오셨다.

 “이건 아예 걷어 보지도 않은 새 책이라서 다시 갖고 왔어. 잘못 버린 거 같아서.”
 
 “아닙니다. 그냥 다 버리려고 했어요.” 어쨌든, 그 후 텅 빈 책꽂이가 썰렁하지만 시원했다. 그렇게 빈 책꽂이는 장식장이나 식료품을 쌓아 놓는 보관대가 되어 버렸다. 한쪽 벽을 비웠더니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이 덜어진 듯 가볍고 이제 이 땅을 떠나기 홀가분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후 다시 몇 년을 더 살다 보니 비웠던 책꽂이가 다시 채워지는 중이다. 그래도 한번 버리기 시작하니 책을 버리는 일이 참 쉬워졌다. 책에만 국한된 건 아니라 옷을 하나 사들이면 옷걸이에서 다른 옷 하나를 빼내는 습관도 몸에 뱄다. 그렇게 뺀 옷들은 깨끗하게 다림질하여 비닐에 개별포장까지 한 후에 와흘 등, 여성 장애인시설로 갖다 드렸다. 좀 아깝다 싶은 옷들과 몇 년 동안 잘 사용하던 스카프 같은 것에 라면 한 상자라도 더 보태어 절기 때는 시설을 방문하던 일이 코로나로 인해 지금은 중단되어 버렸지만, 꽤 오랫동안 이런 일상은 관습이었다. 버려야 다시 채워지고 나눠야 더 풍성해진다. 안으로 싸 안는 것보다는 비우고 내어 줌이 즐겁고 행복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비운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십 년 전,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생긴 습관인 듯하다. 자신의 물건을 선 듯 남에게 내어 주기가 어디 쉬운 일이든가? 아니다. 나눈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 줄 작정을 하고 긴 시간 훈련이 되어야 한다. 비운다는 것은 단순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줌으로써 그릇을 비워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그동안 빈 소주병을 주어 판 백 원짜리를 모아 수재의연금을 보내고 나니 비로소 오늘 숙제를 끝낸 듯 홀가분했는데, 방 벽에 가득 찬 옷걸이를 보는 순간, 비울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던 여성 장애인 시설에 가기 위해 옷걸이를 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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