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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가 좋다
송영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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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25  17: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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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 지난 바다는 모처럼 휴식 중이다. 여름 동안 북새통을 치른 아침 바다는 텅 빈 충만이다. 
 
 여름이 물러간 백사장을 맨발로 즈려밟는데, 맨발에 닿는 감촉이 감미로워 껑충껑충 물방울을 튕기고 있다. 

 
 이제 바다는 내 차지다. 떨구어 내지 않아도 잡념이 저절로 사라진다. 밀려왔던 바닷물을 훌훌 벗어 버린 민둥의 백사장엔 물결이 남긴 모래톱만이 이야기하고 있다. 물결이 뒤척일 때마다 모래는 부서졌다가 모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파도가 거칠게 몰아칠 때는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헤쳐 모여를 수십 번 시켜도 복종해야만 하는 사병들의 훈련이 연상된다. 넓은 백사 벌은 무한대의 횡대로 걸작을 새기고 전시 중이다. 맨발이 닿는 곳마다 모래톱이 밟힌다. 밤새 물결과 모래의 씨름은 굴곡진 모래톱을 탄탄하게 만들어 놓아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발바닥 용천혈이 자극되어 아프지만, 건강을 위한 묘약이라 생각하니 거북하지 않다. 
 
 모래톱은 연단(鍊鍛)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이도 저도 못 하는 막다른 골목에 서 보았는가. 이제는 살만하다고 생각할 때, 느슨해진 틈을 타서 느닷없이 찾아든 불행이 삶을 주저앉혀 버리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교만에 틈을 주어 무방비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늘 깨어 있어라.’ 이 진리는 성경에서나 읽어 본 글이었을 뿐, 삶에 진지하게 대입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살아내야만 하는 현실에 동아줄이라도 하늘에서 내려주시면, 삶에 무게를 오롯이 얹고 스르르 올라갈 수 있기를 바라는 건,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은 시련이 찾아오기도 하고 고비를 넘기면 깨우침과 성숙의 과정으로 점철되지 않는가. 연단의 끝에 얻어내는 것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시나브로 찾아오는 평화이다. 내면이 강철처럼 단단해져 더는 휘청거리지 않게 되는 지혜를 터득한다. 
 
 마냥 걷다 보니 눈길이 머무는 곳이 있다. 기와 모양의 모래톱이다. 얼마 전 보았던 한옥 지붕이 아직 뇌리에 머물러 있어서 한눈에 알아봤다. 흙으로 만든 평기와라고도하는 암키와를 지붕에 깔아주고, 원통형을 세로로 이등분한 모양인 수키와로 암키와 사이 사이를 메워 준다. 처마 쪽 기와 끝부분에는 각이 진 암막새와 원의 형태인 수막새로 마무리한다. 음양의 조화로 완전체가 되어 바람과 눈, 비를 막아주는 한옥의 지혜에 감탄했었다. 
 
 여기서 기와 모양의 모래톱을 만나다니, 비슷한 정도가 아니고 딱 맞는 기와 형상이다. 기와 모양의 모래톱을 만난 건 필연이다. 내 노후엔 댓바람 소슬 거리는 명당에 한옥을 지어서 살고 싶었는데 정녕 꿈은 이루어지려나. 지금 돌이키니 인증 샷 이라도 남겨둘 걸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때를 놓쳐 버린 것에 연연하지 않으련다. 이미 마음 깊이 각인되어 있으므로. 
 
 바람의 기척이 순한 날이다. 파도가 쏴아 쏴아 같은 음정으로 노래를 부른다.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처럼 미성이다. 썸 타는 시간도 없이 단박에 반한다. 사람은 한 음을 붙잡고 발성 연습 정도는 할 터이다. 바람의 지휘는 강약 고저를 끌어내지 않고도 바다에서만 들을 수 있는 명곡을 초연 중이다. 사람만 감흥 시키겠는가, 신께 헌정하는 명곡이라 해도 비약이 아닐 정도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가도 환대를 해주는 바다처럼 세상 모든 이가 이렇게 아침을 시작하면 좋겠다, 
 
 구색을 갖추듯, 여름날보다 체온이 식은 햇볕은 저 홀로 리듬을 타는 물결 위로 조명을 쏘아 댄다. 햇볕의 연출은 물결 위에 추상화로 그물망을 만들고 눈을 홀린다. 
 
 건강만이 화두인 노년의 부부가 이 세상 하직하는 그날까지 우리 둘밖에 없다고, 손을 꼭 잡고 맨발로 걷고 있다. 줄넘기하듯 폴짝폴짝 파도를 뛰어넘는 아이와 아빠가 동영상 촬영을 하는 장면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애틋한 정경이다. 
 
 아기 물새 여섯 마리가 눈에 어른거려 나도 덩달아 종종걸음으로 쫓아가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새끼는 어떠한 것도 작고 앙증맞아서 사랑스럽다. 본능적인 내리사랑이 꿈틀댄다. 점점이 사라지는 물새들이 일과가 궁금한 건 잃어버린 순수를 바다가 찾아주어서다. 
 
 서로 경계를 하거나 냉소적이지 않을 수 있는 곳, 아무도 타자일 수 없고 선뜻 우리가 되어 마음 열 수 있는 곳, 바다는 치유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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