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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마라
김명경  |  시인/수필가/전 중등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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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26  16: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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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을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올 때와 만날 때는 서로가 설렘으로 정겹게 만나서 갈 때는 미련 없이 떠나간다. 이러한 이별이 어디 오늘뿐이겠는가만은 계속되는 이러한 현상은 지구가 몇천 년 바뀌어도 일어날 것이다.

 
 나는 지금 의자에 앉아서 하늘의 구름을 보고 있다. 구름의 모양이 단, 몇 분이지만 여러 번 바뀌는 모습에서 정처 없는 우리네 인생을 논하는 듯하다. 저렇게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가는 길에서 우리의 삶이 틀리고 낮과 밤이 다르듯 그 흐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가는 것 같다.
 
 지금 마당에는 많은 꽃이 피어있다.
 
 이 시간에도 저 꽃들은 늙어가고 나 또한 익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건 세월의 흐름을 명시하여, 가지 말라고 해도 잡을 수 없는 현실에서 나도 모를 아쉬움이 내 뇌를 때린다. 어떻게 잡을 수는 없을까? 하고 말이다.
 
 세상과의 인연의 끈은 이렇게 만들어짐으로써 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피기를 겨우내 기다렸는데, 피자마자 가는 것을 느낄 때 그 아쉬움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이별의 아픔도 상처의 쓰라림도 겪어보아야 아는 것이기 때문에…
 
 바위는 태초부터 생겨서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생명이 없는 그 바위도 가고 있다. 그 가고 있는 현장을 보려면 인근 바닷가 등을 가서 살펴보라 바위가 썩어있는~ 썩은 바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만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저 바위처럼 썩어서 흙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들과도 분명 헤어져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 가도 내가 안가면, 가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떠나면 모두 내 앞에 없으니 다 가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떠나기 전에 우리와 우리에게 할 일의 숙제를 다 해야 하리라 본다.
 
 산을 보라 그리고 숲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을 다시 보라, 그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음에 아무 탈 없이 수천 년을 지내 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사연은 숨어 있는 것이다.
 
 조상 나무는 인간을 위해 쓰임을 당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나무가 지금의 숲인 것이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등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말이…
 
 그렇다. 꼿꼿하고 멋진 나무는 베임을 당하여 구중궁궐을 만드는 목재가 되어 천년 고택의 현실을 자아내고 있다. 그 흔적은 바로 내 주변에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내 곁을 지나가는 물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물을 잡으려면 가둬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차고 난 물 말고는 제 갈 길을 갈 수 있도록 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탈이 나는 것이다.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홍수로 변하여 그 뒤끝은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파도를 보라 잔잔했던 바다가 갑자기 바람이라는 강적을 만나 서로 싸우는 것을 말이다.
 
 바다는 바람이 없으면 순한 양에 불과하다.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침공하듯 크게 때리면 폭풍으로 바뀌어 그 피해 또한 인간들이 당하고 있다. 물론 동식물도 함께 지만…
 
 이렇게 지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은 인간에게 도전하고 있다. 다시 따진다면 일당백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인간들은 정신을 굳게 차려야 되지 않겠나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을 공격하니 이게 말이나 되겠나? 생각이 든다.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여 여기저기서 피해의 참상이 뉴스 등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과연 그들이 전쟁에서 이기면 돌아오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전범 그 자체일 것인데 말이다. 전쟁에서 이기면 승리자는 영원히 산다는 진리가 있다면, 지구는 전쟁판이 될 텐데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이 지은 죄로 평생 죽음의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후손들까지도 영향을 주면서…
 
 이러한 행동을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을 말이다. 지금 북한의 행태가 의심스럽다. 평화적인 통일이 되어도 남북의 언어라든지, 문화의 차이라든지 하는 것 등에서 화합이 어려울 판에 하루가 멀다고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 모습에 나는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몇백 년 살 것처럼 말이다.
 
 다만 내가 직접 살아가며 느끼는 인생길은 생방송이고, 남들이 했던 삶을 각본으로 재연하는 것은 재방송일 뿐이다. 작가가 필요 때문에 꾸밀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재방송보다 생방송의 중요성을 우선시해야 한다. 생방송은 내 행동 그대로의 진실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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