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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그리움…나기철 7시집 <담록빛 물방울>
강정만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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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0.07  10: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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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기철 시인이  <담록빛 물방울>을 발간했다. 통산 일곱번 째의 시집이다. 시인은 짧은 시를 쓴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 아주 좋다. 짧아서 읽기 좋고, 간결해서 시의 멋스러움에 다가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 시인의 시를 쉬운 시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선생에 따르면 쉬운 시와 어려운 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와 좋지 않은 시가 있을 뿐이다. 나는 선생이 주장한 이 ‘시의 정의’를 줄곧 인용한다. 여러번이다. 

 나의 오만일지 몰라도 나는 어려운 시를 좋지 않은 시라고 딱지를 붙이고 외면한다. 내 시읽기가 유치해 어려운 시를 이해할 문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간결한 시, 내가 나기철의 시집을 받아들고 한 숨에 읽은 것은 ‘좋은 시’이기 때문이다. 나의 시 읽기의 활주로에는 나기철의 시가 늘 ‘좋은 시’로 착륙한다. 나의 방식으로 들이대면 ‘읽기 편한 시’다.

 그의 이 일곱 번째의 시집 속 시를 읽으며 나는 사유의 은하  속으로 나를 내몬다. 거기에는 무수한 별들이 떠 있다. 빛은 침묵하지만, 그것으로  말한다. 연민과 질박(質樸)과 고고함까지. 상투적이지만 할 수 없다. 이 언어의 영역을 넘어서서는 딱히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시인은 아마도 이 숲 속에서 날마다 자신의 ‘부족’들과 시를 캐내고, 담금질하고 마침내 벼려내는 ‘대장장이’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싶다. 


이번 시집 이름이  <담록빛 물방울>이다. ‘담녹색’은 엷은 녹색이다.잎새에 인 이슬 방울은 엷은 녹색을 띨까?  시를 읽으며 상상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담록빛’이다. ‘색’이 아니라 ‘빛’을 이야기 한다. 물방울이 빛이다. 빛은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 빛이 어둠을 밝힌다는 표현은 그런 의미일 거다. 어두운 데 있는 사람들을 밝혀주는 것, 빛. 나기철의 담록빛도 이와 같을 것이다. 우리들이 ‘망각의 어둠을’ 비춰 그것을 하얀 스크린에 들춰내려는 시인의 의도를 나는 읽어 냈다. 

 아마츄어의 시 읽기에 머물러 공허한 헛소리나 질러대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이런 시 읽기가 대단한 비약이다.  시인은 그 ‘ 빛이 존재하는 세계’의 목소리를 그의 시로 절창한다. 현을 타고 흐르는 차이코프스키 ‘비창’의 ‘ 유려한 슬픔과  절망적인 우울’에 닿아 있다. 이게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말이지 전부가 아니다.  슬픔과 절망으로 밤을 새워본 자만이 그 끝에 나타나는 사랑과 감동을 품을 것이다. 그 감동 속에 나기철의 모정(母情)이 특유하다.

  “늘/건너오는/투명한 듯//사가사각/나뭇가지// 담록빛//물방울/ 굴러가는”<목소리>

 이 시에서 목소리를 내는 이는 누구일까? 시인의 첫사랑일수도, 현재의 사랑일 수도, 이제는 연락조차 없는 고우(故友)일수도, 어떤 이유나 계기로 두절된 형제자매나 친척일 수 있다. 단언컨대, 이 시는 나기철이 어머니 목소리다. 그에게 어머니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이북에서 피난와 제주도로 이주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사연이 그의 시에 서사화 된다. 그가 2014년 펴낸 <젤라의 꽃>에는 1부에서  ‘새’ 등 6편의 시가 모두 작고한 모친을 그리워 하는 사모곡이다.이번 시집에서도 ‘평화 양로원’과 ‘그 노래’ ‘입도’ 등에서 계속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길어올리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노래는 아마도 계속될 듯하다.
 
 이제 나기철의 ‘정체’를 까자. 1953년 서울에서 출생한 나기철 시인은 12살 무렵에 제주에 입도했다. 그의 부친과 모친은 모두 이북이다. 6·25 전쟁 피난민이다. “시인의 어머니는 평양간호조산전문학교 학생으로 병원에서 실습중이던 열여덟살 때 6·25가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한 채 귀가 했다가, 1·4 후퇴때 월남했다.”<젤라의 꽃/‘생의 감각을 되살리는 간결한 아름다움’ 현순영 문학평론가/88쪽> 이 글로 봐 어머니는 ’인텔리겐챠‘였지 싶다. 제주입도의 이야기를 귀동냥 한 것을 여기에 덧붙인다면 피난은 아버지와 함께였다. 하지만 제주도로는 어머니와 시인과  여동생 뿐이었다. 이 가족사에서 ’무엇인가‘ 빠졌다. 

 나도 나기철 시인이 자란 환경을 잘 몰랐다. 서귀포의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나는  당시 나의 스승인 고 김태국 선생님과 버스를 타고 제주시로 와서 한라문화제 학생 백일장에 참가했다. 며칠후 발표를 보니 나는 낙방하고 당선작 이름에 ‘나기철’이 있었다. 대체 어떤 학생일까? 당연한 의문이 나의 뇌리를 덮었다. 

청소년기를 벗어나 글을 쓰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이 시인의 이름 석자가 나오면 관심을 가져 보곤했다. 과연 백일장 당선작을 냈던 나기철이라는 소년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때때로 언뜻 스쳐지나가는 그의 긴 머리카락과 바바리 코트를 보고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고, 그런 이유는 나의 자존심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종종 그의 시와 ‘나기철’ 이라는 이름 석자가 지상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했고, 그가 시인으로서 한 평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를 보면서 나는 열심히 주문을 외워대며 날을 세우는 샤먼, 대장장이를 연상한다. 그 ‘주문’ 밖에 없는 것 같은 옹고집쟁이의 면모. 자신의 대장간 앞에 ‘외부인 출입금지’ 목판 팻말을 십자가 형식으로 만들어 걸어둔 채 날을 내기 위해 연신 담금질과 숫돌질에 땀을 흘리는, 우치를 뛰어넘는 우치. 그것이 고작 야공(冶工)에 머무를 대장장이를 장인(匠人)으로의 초대였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위대함은 평범한 곳에 숨어 있었다. 나기철이 그러했다. 그리하여 어느덧 초로에 접어든 나기철의 시는 이렇게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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