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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칼립투스 나무를 위하여
문상금  |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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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0.23  16: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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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 어느 곳을 가더라도 힐링이 되지만 특히 이중섭거리는 일을 하거나 시낭송을 하거나 공연을 관람하거나 그냥 혼자서 터벅터벅 걸을지라도 가장 자유로운 곳인 것 같다. 서귀포 붙박이인 내가 집 다음으로 제일 많이 머무는 곳이면서 심장이 멎을 정도로 설레는 곳이다.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늘 사람과 자연과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지금 행복한가? 설레는가?’늘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행복해도 전진하고 설레도 질주하고 행복하고 설레면 더 몰입하는 것이 나의 시발점이며 장점이 되곤 한다.

그 이중섭거리 북적이는 토요일 오후에 우연히 J사진작가를 만났다. 짙은 블랙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서홍동 윗동네 근처에서 아주 큰 유칼립투스 나무를 본 적이 있는데 정확한 장소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한적한 감귤 밭에 큰 감귤창고가 있었고 그 앞에 우뚝 치솟아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 동쪽 개울 너머로 한라산 방향으로 쭉 올라가면 오래 묵은 감귤창고들이 있는데, 혹시 그 쪽인가요?” “글쎄요, 어렴풋해서, 몇 년 전에 본 것이라 지금도 남아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마 그때보다 많이 자라 있을 텐데...” 꽃이나 나무를 특히나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을 위한 시를 많이 쓰고 보호하고 애정을 쏟곤 하는 터라 ‘지금도 남아있을지’라는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당장 가봅시다” 부리나케 하던 일 팽개치고 감귤 밭에 환기통이 달린 오래된 창고가 있는 몇 군데를 훑어 찾아다녔다. 생각보다 깊숙이 들어간 곳에 아아, 고독한 거인처럼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멀리서부터 잎이며 줄기며 껍질이 길게 벗겨져 나부끼는 것까지 환하게 바라다보였다. 줄달음쳐 나무 가까이 가는 모습을 보고 흰둥이 한 마리가 마구 짖으며 덩달아 뛰었다.
 

근접해서는 전체 몸통이 잘 안 잡혀서 멀리서 좌우 앞뒤로 사진을 여럿 찍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반갑다는 듯 나무 전체가 분분히 나부꼈다. 그 때마다 나뭇잎에서는 엷은 레몬 향 비슷한 체취가 풍겨져 나왔다. 흰둥이 짖는 소리에 누군가 내다보았다. “사진 찍으러 오셨군요? 예전에는 나무 보러 자주 오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요즘은 좀 줄었어요.” “수령은 얼마정도 되었을까요?” “아마, 이 앞에 감귤창고가 지어진지 한 110년 되었으니까, 족히 100년은 수령이 된다고 보아야지요.” “이 창고는 그럼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이군요?” “네 맞습니다. 일본인이 감귤원을 경영할 때 지어졌고 지금도 단단합니다.” 

 “이 나무는 호주가 원산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여기에 심어져 지금도 계속 자라나는 것일까요? 키가 한 20미터는 넘을 것 같네요” “네, 이곳은 일본인 미네라는 분의 감귤원이었는데요. 강창학 선생 부친이 해방 후에 일본인에게 물려받았고요. 강창학선생의 모친인 김말년 여사께서 호주 여행을 갔다가 유칼립투스 나무가 특이하고 마음에 들어서 한 그루를 들여와 이 감귤창고 앞마당에 심어놓은 것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입니다. 토지주가 올해도 한 번 바뀌었고요. 얼마 전에도 베어 버리려 하다가 엄두가 안 나서 그냥 둔 겁니다.”

 상록교목인 유칼립투스는 잎이 둥글고 은회록색이며 여름에 노란색의 꽃이 피어나며 레몬이나 페퍼민트 향기가 나고 살균작용을 한다. 세계에서 가장 키가 컸던 나무는 높이 130미터를 넘었다는 호주의 유칼립투스였는데 귀여운 동물 코알라의 유일한 식량으로 코알라는 향기로운 잎을 따먹으며 대부분을 나무에서 생활한다. 만병통치약이라 부를 정도로 항균 및 소염 등의 효능이 뛰어나서 잎을 정제하여 아로마 오일로 많이 쓰이고 좋은 향기 때문인지 어린 나무는 실내 화분으로도 애용되는 것이다.
 

나무 아래로는 다른 식물들이 일절 자라지 않았고 측백나무 작은 솔방울 같은 씨앗들이 떨어져 있어서 한주먹 줍기만 해도 손에 향이 배어 기분이 상쾌하였다. “보통 60미터까지는 자란다고 하니, 아마 이 크기나 수령은 제주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 같은 데에서는 방풍림으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작은 씨앗 한 톨이 싹이 트고 어린 묘목이 되고 이런 낯선 서귀포 감귤 밭에 와서 빈 감귤창고를 지키며 오랜 세월 하늘 높이 나날이 성장할 수 있다니 경외감이 절로 들었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라고 말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이다, 쓸쓸하고 처절하게’ 유칼립투스가 전하는 속삭임이 밤새 귓전을 맴돌았다. 
 

‘칭칭 그리움으로/악착같이 뿌리내리는/아, 고독한 거인아 /꼿꼿한 자존심 하나로/ 하얀 비수 같은/ 빛살 날리며 살아간다/ 살아서 푸르렀다고/정녕 푸르렀다고// ‘유칼립투스 나무를 위하여’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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