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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도 못 사는데 폭도에 자금을 줬다니…”4차 4·3일반재판 직권재심서 10명 명예회복
여성·청소년 대다수…군사재판 30명도 무죄
이서희 기자  |  staysf@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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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0.31  17: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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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이서희 기자] 70여 년 전 아무런 죄 없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일반재판 수형인 10명이 명예를 회복했다.

제주지방법원 형사4부(재판장 강건 부장판사)는 31일 제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4번째로 청구한 일반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고(故) 현봉하 등 10명에 대한 재판을 열고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은 군사재판 직권재심과 같이 검찰의 무죄 구형, 변호인의 무죄 변론, 재판부의 무죄 선고까지 한꺼번에 이뤄졌다.

이날 직권재심을 통해 명예가 회복된 이들은 1948년과 1949년 사이 포고 위반과 내란방조 등 혐의로 일반재판에 회부돼 옥살이를 하거나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옥살이를 한 피해자 중 만기출소한 피해자도 있지만 모두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다 생사를 달리했다.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이들도 예비검속을 통해 총살 당하거나 토벌대에 의해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피해자 대다수는 여성이나 10대 청소년이었다.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고 장춘자와 손경현은 토벌대에 이유없이 끌려간 뒤 행방 불명됐다.

고 현봉하는 폭도에 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1949년 3월 징역 1년에 처해져 목포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5개월 만에 생을 마감했다.

현봉하의 손자 현모씨는 이날 법정에 나와 4·3 당시 무자비했던 공권력에 대한 기억을 풀어냈다.

현 씨는 “4·3 당시 11살이었는데 할아버지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쌀을 사기도 힘들었다”며 “현금이 귀했던 시절인데 무자비한 공권력이 선량한 시민에게 무장대에 자금을 댔다는 누명을 뒤집어 씌웠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41차 군사재판 직권재심도 열려 고 고용전 등 30명의 4·3 피해자가 무죄를 선고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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