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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함과 배짱’의 삶…고 신구범 전지사의 명복을 빌며
강정만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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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02  14: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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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별세했다. 
 
 고관절 때문에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무엇이 그렇게 바쁘다고 황망히 떠났을까? 회자정리라지만 슬픔이 앞을 가린다.

 
 행복한 삶과 순탄하지 못했던 기구한 삶을 놓고, 어디에 더 많이 색칠을 할까? 어떻게 보면 행복한 삶이었다고 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기구한 삶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망설여 진다. 행복하기도 해보였고, 신문의 기사에도 있지만 파란만장한 삶이었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런 이분법적 해석에서 벗어나 전체적으로 보면 행복한 삶이였지 싶다. 이 정도의 삶은 평범함이 쫓을 수 없는 신의 축복은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는 우선 영리한 인재였다. 머리가 우수했고, 창발력이 뛰어났다.  이런 인재에게는 운명의 신이 장난을 치든가 일을 내는 수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의 삶은 이런 생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여기에서 ‘파란만장’과 ‘대가 센 팔자’라고 하는 어의가 대중속으로 어필한다. 그는 좀처럼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성격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샀으나, 반면 적들을 많이 꼬이게 했다. 뛰어난 언변술은 그의 우수한 두뇌의 ‘창작’으로 보이나 때로는 ‘자뻑’에 빠진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의 학력 중 육군사관학교를 중퇴한 것은 두고 두고 화제감이다. 그것도 육사 생도대장을 맡고 있는 학생이 졸업학년도에 중퇴라니 벌려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항간의 일설은 그가 그의 부인과 데이트를 하다 귀교(歸校)시간을 놓친 것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시간을 놓치자 교장이 한번은 봐준다고 해서 없던 일로 되었지만, 신구범 생도는 교장을 찾아가 학칙을 위반했으니 그만 중퇴하겠다고 해서 이뤄진 이야기라는 것이 정설이다. 
 
 육사 4학년에서 졸업을 몇 달 남겨두고 중퇴한 것은 필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신 전 지사가 육사를 가는 시대는 1960년대로 입학 하기가 서울대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려웠던 시기이고 졸업하면 ‘출세’가 보장되는 길이었다. 여기를 졸업을 불과 몇 달 앞두고 그는 중퇴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 했는가. 육사의 ‘실패’는 1967년 5회 그에게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월계관을 씌워준다. 공직입문은 ‘체질적’이었다. 제주도 기획관,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농무관,FAO(국제식량농업기구) 교체수석대표, 농림수산부 축산국장, 농업구조조정정책국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YS정부 시절인 1993년 12월 제29대 제주도지사로 승승장구 했다.
 
 이어 첫 민선 지방선거인 1995년 6·27선거에선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돼 31대 지사를 역임했다. 그가 현 정부의 임명직 현직지사였던 당시 민주자유당이 특정인에게 공천을 주려하자 이에 반발해 ‘친야 무소속’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심으며 화려하게 당선됐다. 그러나 1998년, 2002년 두 번의 제주지사 선거에선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는 지사 재임시절 역대 어느 지사도 감히 따라오지를 못한 굵직한 사업들을 해낸 인물로도 평가된다. 그는 도지사 취임 후 ‘감귤생산조정제’를 맨 먼저 부르짖었다. 감귤이 양산되어 똥값 직전까지 하락할 때였다. 어쩌면 사회주의 정책과도 같은 강제성 정책이었다. 감귤생산량의 강제적 조정을 도정이 실시해 감귤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그의 염원은 결국 농협 등의 반대에 부닥쳐 실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현재의 ‘감귤적정 생산량’이라는 제주도정이 실시하고 있는 제도의 모델이 돼 오늘 감귤값을 안정시키는 ‘기둥’ 노릇을 하고 있다. 
 
 그는 축협중앙회장을 거쳐 친환경 농업회사법인인 (주)삼무와 전시판매장인 삼무힐랜드를 설립하고 운영했다. 삼무힐랜드는 한창 운영 중 제주지사 재직시절 뇌물수수사건에 휘말려 수감되면서 그동안 운영자금으로 쏟은 부채를 막지 못해 문을 닫았다. 
 
 축협중앙회장 시절엔 정부의 강제적인 농.축협 통합에 반발, 국회에서 할복사건을 벌였다. 필자는  이 소동 후 평소 신 전 지사와 밥먹는 자리를 종종 함께 가졌던 Y변호사와 서울의 S병원으로 위문을 갔었다. 위문간 우리에게 이런 소동을 벌이고도 태평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는 그 대범함에 다시 한번 놀란 적이 있다.
 
 ‘범인(凡人)을 초월한 평범인’. 그는 이런 등식의 인간상을 구현해 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세인들은 이렇게 기억한다. 말장난 같은 이 표현 속에 그의 비범함과 배짱이 환유된다. 그의 침상 베갯머리에는 사심없이 제주발전이라는 숙제를 풀어내려던 그의 열정이 그의 비범함과 함께 늘 숨어있을 터인데, 이렇게 떠나니 아쉬움이 한이 없다. 명복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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