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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등불이 환히 켜지는 서귀포
문상금  |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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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20  17: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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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물새가 날고 먼 수평선에 집어등 불빛 환히 켜지듯 그리움이 덕지덕지 걸리는 서귀포 칠십리 바닷길은 온통 귤림추색으로 늦가을 정취가 뼈 시리듯이 눈부시다. 너무도 아름다워서 숨 막히는 서귀포의 이 비장미처럼  평화로운 보목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시인은 태어나고 자라고 한평생을 시를 쓰시다 푸르른 하늘로 불현듯 소풍 떠나셨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학년 재학시절 학과장을 찾아가 휴학계를 제출하였다. 시절이 하 수상하였다. 수업은 매일 휴강이었고 연일 찢겨나가는 함성과 마찰음이 쏟아지는 데모의 한복판에서 화염병 휘발유 냄새와 매캐한 연기를 바라보며 늘 참여시냐? 서정시냐? 갑론을박이 일었고 중앙로 ‘까메라따’에서 4인 시화전을 끝으로 잠시 휴학하기로 결정하고 혼자 여러 장르의 글들을 썼다. 희망 대신 절망을 배웠던 그 학창시절에 양중해, 문충성, 김영돈 등 여러 시인이며 학자이셨던 교수님들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특히 양중해 시인은 강의 도중에 ‘자화상’이라는 글을 쓴 것을 기억해 주셨고 늘 인자하게 웃으시며 이름을 불러 주시곤 하셨다.


 아윤 한기팔 시인을 맨 처음 뵙게 된 것은 1989년 10월 한라문화제 행사의 일환으로 서귀포문학회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던 일호광장 시사랑 찻집이었다. 일과가 끝난 저녁이면 늘 시사랑 찻집에 여러 시간 머무르며 글을 썼다. 친구들도 오다가다 들리고 많은 사람들이 책이나 편지와 선물 같은 것을 들고 오곤 하였다. 천재 번역가이며 수필가인 전혜린에 흠뻑 심취해 있을 때라 흰색과 검은색의 옷을 즐겨 입었고 말수가 없었다. 계피 향 짙고 생크림 가득 올린 비엔나커피를 유독 즐겨 마시곤 하였다. 천천히 음미하며 회색노트에다 시와 소설과 동화를 빼곡하게 쓰고 편지도 장식하고 일기나 낙서를 하곤 하였는데, 한기팔 원로시인, 고정국 시조시인을 비롯하여 몇 분의 문인들이 우르르 들어오셔서 딱 서귀포 문인들과 조우하게 된 것이었다. 

 우연히 ‘시를 쓰는가?’ ‘네, 조금 씁니다.’ ‘시 다섯 편씩 묶어 이 주소로 보내세요.’ 보목리 681번지였다. 이름도 없이 주소만 적혀 있었다. 몇 번의 편지와 답신이 오고갔다. ‘시를 쓸 수밖에 없구나.’ 아윤선생의 그 말 한 마디에 운명처럼 매일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갓 창간된 서귀포문학에 합류하였고 그 해 늦가을 억새꽃 흰 무리가 분분히 나부낄 때 서울에서 조병화 원로시인과 설의웅 시인께서 서귀포를 방문하셨고 몇 군데 동행하면서부터 삼년 정도 본격적인 시 쓰기를 하게 되었다. 매일 한 권의 시집을 정독하였으며 한 편의 습작시를 쓰곤 하였다. 

 “불안해하지 말고, 마음껏 시를 쓰라, 기꺼이 맨 처음 독자가 되어주겠다”라고 하셨던 아윤선생의 말씀은 큰 격려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마음껏 시를 창작하고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1991년 제1회 제주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1992년 6월호로 『심상』지에  「세수를 하며」 「서귀포 성당」 「상여」 「새」 「선풍기」로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을 때 “문시인”하고 부르시며 기뻐해 주셨다.

 종종 몇몇 제자들과 섶섬이 바라다보이는 보목마을에서 재피잎 듬뿍 넣은 자리강회와 자리물회를 먹으면서 때로는 소남머리 근처에서 박목월 시인이 좋아하셨다던 자장면을 드시면서 “시퍼런 이십 대초에, 서울생활에 뭐 수중에 돈이 있었겠나?, 늘 배가 고팠었지, 그래도 시는 꼭 쓰고 싶어서, 시 한 두 편 꼬깃꼬깃 적어서 원효로 박목월 시인 자택으로 들어서면,” “한 군, 밥은 먹었는가, 자장면이나 한 그릇 할까?”하시며 자장면을 사주셨다는 한기팔 원로시인의 말씀을 들으며, 그 시만큼이나 따뜻하고 자상하셨던 목월시인의 한 면을 또 간접적으로 엿보게 되었다. 

 ‘나는/흔들리는 저울대/시는/그것을 고누려는 추’  박목월 시인의 ‘시’라는 제목의 한 부분을 여러 번 들려주시면서 항상 정진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글씨로도 큼지막하게 써주셔서 표구하여 잘 보이는 벽에 걸어두어 일상을 고누고 가늠하는 척도로 삼게 되었다.

 아아, 문병을 두 번 갔다 왔다. 한 번은 나기철 시인이 동행하여 사진을 찍어주었다. 또 한 번은 혼자서 ‘그 바다 숨비소리’ 시선집을 들고 가서 몇 편의 시를 읽어 주었다. “시인입니다. 그리고 이 시들은 직접 쓰셨던 시들입니다.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천천히 고개를 끄떡거리셨다.

 생전의 그 말씀들을 기억하며 매일 일상에서 만나는 아주 섬세한 감정의 떨림 같은 것, 울림 같은 것, 꽃잎 같은 것, 작은 점 같은 것, 서정의 끝자락 같은 것, 신서정의 시를 변함없이  써나갈 것이다.

 멀리 언덕 위에 흰 것들이 흔들린다/손수건 같은 것/속옷 같은 것/흰 것은/이 세상에 온
최초로 입었던 배냇저고리 같은 것/나를 감싸주고 품어주었던/흰 속살을 지닌 꽃들이// ‘흰 도라지꽃 바라보며’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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