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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가지 잡담…시인과 에세이스트
강정만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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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2.10  10: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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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기철 시인이 ‘심상’지 11월호(2023)에 실린 한기팔 시인 추모시를 휴대폰 메시지로 보내왔다. 한기팔 시인은 지난 10월 3일 돌아가셨다. 심상이 꾸민  ‘故 한기팔 시인 회상’ 편에 나기철 시인의 시 ‘산등성이 남쪽’과 ‘빈터, 그 노을’ ‘그가 있다’ 세편을 실었다. 
 
 나 시인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조용한 성품이다. 흔히 말하는 얌전한 성격같다. 그의 부모는 이북에서 서울로 피난 왔고, 그는 서울에서 태어난 후 그의 모친과 제주로 이주해 살았다. 그의 조용한 성격은 섬 텃새 만만치 않은 제주로 이주해 살다 보니 생긴 것인지, 아니면 천성의 것인지는 분간할 수 없다. 건방을 떨어 추량 해본다면 후자가 맞지 않을까 한다. 그와 몇 번의 만남으로 필자는  그를 내 어릴 때 상상했던 사색적 유형의 시인의 전형(典型)으로 분류했다.

 
 나 시인과 부인 오인순 수필가, 수필가인 정영자 서귀포문인협회 회장, 국제 PEN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회장인 김원욱 시인, 필자 이렇게 의기 투합했다. 송년회라는 핑계로 만든 자리다. 필자를 제외해 모두 제주 문학인들이 모이는 ‘장마당’에서 한가락 하는 글쟁이들이다.
 
 나 시인은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한 시인이다. 일곱번째의 시집을 최근 발간했고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부인 오인순 선생도 수필가로서 종종 매체에 글을 발표한다. 정영자 수필가도 이미 책 두권을 냈으며 부지런히 쓰고 있다. 김원욱 시인도 시를 탐구하고 쓰는데는 필사적인데, 고향인 남원읍 위미리 산중에 ‘도량’을 마련하고 ‘시의 도(道)’를 닦고 있다. 
 
 근근도생(僅僅圖生)하는 측에 속하는 필자는 이들이 부럽다. 글을 마음껏 쓸 시간을 마련했고, 천의무봉의 글을 탐하는 이들을 보면 난데없고 철 지난 질투까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하루벌어서 하루 먹는 글쓰기, 동냥질만은 하지 않을 정도의 필자로서는 이게 다 팔자소관이라고 탓하고 만다.
 
 나 시인이나 부인 오 수필가는 이미 교직에서 정년퇴임해 오직 글쓰는데 전심전력하는 모습이다. 이 부부는 만사제쳐 놓고 시와 수필을 쓰는데 하루를 쏟아붓는 듯하다. 오 수필가의 글은 언제 읽어도 일상의 환유가 맛깔스럽다. 정 수필가 또한 글을 쓰는 전업작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늘 노트북을 켜서 앉아 있다. ‘작가의 길 해설사’ 라는 다망의 틈에서 쓰고 발표한 글은 독자들을 사색의 길로 동행하게 만든다. 김 시인이야 더 말할 건덕지가 없다. 시의 도를 닦는 도인(道人)에게 저잣거리의 잡류(雜類)의 참견은 그것 자체가 몰상식이다. 언제 어떤 글을 내놓아서 졸고 있는 내 등을 죽비로 치며 일갈할지 내심 기대한다. 
 
 그런데 세 사람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65세 이상으로,  한국에서 노인으로 빗선을 그어 나눠지는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대부분 노경(老境)에 이르러 쇠약해지는 글발을 탄식하는데, 감히 관객으로서 무대에 선 세 분의 노작들을 일별하자면, 글 근육이 불끈 두툼한 살위로 솟고,  탄력이 붙어 읽어내는 독자인 내가 사뭇 좋다. 
 
 이 가운데 특히 나기철은 ‘짧은 서정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시 읽기가 참 좋다. 그의 시는 언제 읽어도  페이소스로 가슴을 떨게 하고, 삶과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사유의 폭으로 때때로 헛헛한 우리의 마음 속 빈자리를 메워 준다. 필자는 매번 나기철의 시를 읽으며 시란 이렇게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아침 보내준 시를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기팔 시인을 추모하는 시 세편, 앞에서 소개한 시 중 ‘산등성이 남쪽’은 한기팔 선생의 장례식에서 그가 낭독한 조시이고, ‘그가 있다’는 한기팔 시인이 쓴 시 두편을 소개하며 간단한 추모의 글로 엮어 냈다. 나 시인이 몇 십년 지기였던 한기팔 선생 ‘부재의 시기’에 겪는 외로움, 슬픔 같은 것을 산문으로 고스란히 드러냈다.
 
 ‘빈터 그 노을’은 나기철이 1990년 작으로 부제가 ‘한기팔 님께’다. “못넘는 산/ 구름퍼지고//연립주택 창가/먼 불빛// 돌아오지 않는/ 꽃// 노을빛// 遠景// 그대, 西歸浦에서/불을 지피며/바라보는/ 마라도” 
 
 33년전 나기철은 한기팔 시인에게서 이미 처연하기 이를 데 없는 고독을 본 것 같다. 동시에 이를 뛰어 넘으려다 좌절하고 마는 시인을 읽어 냈을 것이다. 나기철도 그러하지 않을까. 희망을 이야기는 하나 현실에서 그려낼 구상(具像)은 없다. 그래서 시인은 나약(?)하고. 시인은 ‘극복’하지 않는다. 시인은 운명처럼 닥친 고뇌와 상처 속에서 늘 ‘견디어 낼 뿐’이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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