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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집 짓는 곳이 있으면 근처에서 즐겨 놀곤 하였다. 늘 또래들과 어울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모래 같은 것 톱밥 같은 것 아마 여느 아이들처럼 촉감놀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특히 나무의 마지막 숨결로 보이는 각 나무들이 내뿜는 향이 좋아서 톱밥 놀이를 해가 지도록 하곤 하였다. 부드럽게 깎일수록 곱실곱실한 그것들은 때로 눈꽃이 되기도 하였으며 손이나 발을 파묻고는 스스로 자신의 손이나 발을 찾아내는 숨바꼭질이나 술래가 되기도 하였다.
여섯 번째 시집 ‘루즈 바르기’에 ‘목수’라는 시를 수록하였다. ‘나무에 길을 내는/사람들이 있다/먹줄 길 따라/각 맞추어 잘라내고/높낮이를 깎아내면~/거친 손 사이로 탄생하는/ 세밀한 길/그 길을/흰 솜처럼 걸어가는/사람들이 있다/신기의 손을 지닌/나무를 다루는/어진 사람들’//‘목수’ 일부분
서귀포 토평공업단지에서 도민목공사를 직접 운영하시는 최용호 수필가가 연락이 왔다. ‘목수’를 소재로 한 시작품은 굉장히 드문데 “잘 보았다” 며 “목공일 하시는 분들의 밴드에도 올려서 많은 분들이 읽어볼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 서귀포문인협회 회장할 때부터 한 번 놀러가 본다는 것이 여태 짬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문득 토평 꽃동산 근처에 수국도 구경할 겸 며칠 후에 가겠노라고 약속을 잡았다.
초여름 화사하고 슬픈 물집처럼 수국 꽃길이 펼쳐진 길 따라 도민목공사로 들어섰다. 작은 창 햇살을 타고 날아오르는 먼지들과 나무 향으로 인해 현기증이 일었다. 한 150평 되는 목공사에는 온갖 목공 기계와 목재들 조각 작품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느라 낡고 지친 대패들이 수십 개 나란히 걸려 있었다. 어릴 적에 집 짓는 이웃에서 보았음직한 그 흔했던 대패들이, “이것 나무 대패네요?” “네, 1998년 IMF 때 목공소들도 어쩔 수 없이 수십 군데 문을 닫아야만 했고요 저는 일하던 목공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오히려 도민목공사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 때 버려진 대패며 기계들을 가져다 이렇게 한구석에 모아둔 것입니다.” 짙은 커피를 마시며 구석구석 둘러보고 만져보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같이 공존하는 사물들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이 오래 묵은 대패로 나무를 좀 깎아보고 싶은데 한 개 가져가도 될까요?” “그럼 이것을 날을 조금 들여놓아서 드릴 테니까 손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사용하셔야 됩니다.” “네 걱정하시지 마세요. 작업하시는 아버지와 이웃 목수들을 많이 보았어요.” “ 이 목재를 다루는 것을 한 번 잘 보세요. 이것은 측백나무로 도마를 만들어 볼 것입니다.” 목재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틀을 잘라내고 대패질을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매끈한 도마가 완성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목재도 꺼내더니 “한 번 대패질을 직접 해보라”는 것이었다. 어찌어찌 몇 번 대패를 왔다갔다 해보니 좀 느낌이 오는 것이었다. “집에 갖고 갈 것이지요? 날을 좀 들여놓을게요. 시인님 손 다치면 안 되니까요. 아주 날카롭습니다. 큰일이 날까 걱정됩니다.” “네 조심해서 다루겠습니다.” 여러 번 신신당부를 하고 신문지로 대패를 돌돌 감싸서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리 완성하여 포장해 둔 또 다른 꾸러미를 꺼내주시는 것이었다. “도마 선물입니다. 측백나무로 만들었어요.” “저...”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신가요?” “톱밥을 한 봉지 갖고 가고 싶습니다만...” “어디에 쓰실 건지요?” “곱슬곱슬하고 눈꽃 같은 나무 향을 좀 맡아보고 싶어서요.” 깔끔한 자루를 하나 꺼내는 것이었다. “그럼 이것을 갖고 가세요. 이 측백나무 톱밥은 곱고 향도 좋아서 베개 속에 넣어도 되고 글 쓰시는 곁에 두셔도 머리가 맑아지고 참 좋습니다. 그래서 따로 모아둔 것이죠.” “도마와 톱밥을 챙기고 대추나무와 비파나무 어린 묘목을 들고 도민목공사를 나서며 바라본 한라산은 바로 눈앞까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과 겨울의 시간 속에서 눈에 띄는 나무들을 갖고 와 대패질을 해보았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껍질은 점차 사라지고 흰 속살이 보일 때쯤 이마에는 땀이 맺혔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아아, 그랬었다. 이십대 등단 초기에 ‘낫을 갈며’라는 시를 써 발표한 적이 있었다.‘새벽마다 이를 갈았다/쨍하게 날을 세웠다/나의 순수는/ 날이 갈수록 시퍼래졌다’ 짧은 시였지만 여러 군데 인용되어 실렸다. 문득 대패를 신문지로 여러 겹 쌌다. 큰 글씨로 ‘칼날 품은 대패’라고 써주었다. 언젠가 햇살 따스한 봄에 날을 완전히 들여놓아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수십 년을 거미줄과 먼지 속에 갇혀 있었지만 여전히 순수한 날을 잊지 않고 살아있었던 대패가 기특하여 꼭 안아주었다. 젊은 날 그 서늘했던 순수의 새벽처럼 시퍼런 날을 항상 품고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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