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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골새'의 신화에서 ‘미여지벵뒤’의 삶으로…김원욱 시 감상기
강정만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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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2.19  11: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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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 지나 무슨 귀신이 홀렸는지 한 십 년 작은 섬을 떠돌다가 환갑을 한참 넘기고 나서 아무도 없는 들판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데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하고 험한 인간들과 부딪치고 싶지도 않아서(...)”< 나의 변/제주펜(2023)경찰문학(2023)>

 김원욱 시인은 환갑을 지나 위미리 산골에 시 도량(道場)’을 마련했다. 저 시에 나오듯 아무도 없는 들판이다. 필자가 시인을 만나보기 전 들은 소문은 시인이 이곳으로 굳이 이주한 것은 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란다.

 문무병 시인의 길닦기라는 시에는 이 곳을 이승의 끝/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대성동 자배오름로/오시록헌 과수원 창고라고 적었다. 이곳에서 김 시인은 혼자 나름 이 되어 이승과 저승을 오고간다. 물론 시로 말이다. 그는 이곳을 제주무속에서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점을 말하는 미여지벵뒤로 빗대 부른다.

 평론가가 아닌 필자는 시인의 시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논할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 글을 써놓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비겁한 일이라는 지적을 받겠지만 문학적 경험이 짧아서 시를 폭넓게 이해할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 다만, 볼펜이 있으면 아무 곳에나 비비작작 써대는 것을 좋아해서 다른 사람의 시를 써놓고 일독하여 지긋이 눈감고 음미해 보는 일은 여간 즐겁지 않다. 그런 수준이나마 그래도 다음과 같은 조건을 붙여 놓고 있다. “쉬운 시를 읽고, 어려운 시는 피한다."

김원욱 시인의 시는 쉬운시는 아니고, 그렇다고 어려워서 문해가 극도로 곤란한 시도 아닌듯 하다. 열독(閱讀)중에 불쑥불쑥 신화적 상상력 개입이 많아서 실은 종종 어렵지만. 이것은 필자의 잘못으로, 불교와 무속신화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사유의 새김질로 구현되는 서정시를 골라 술술 읽어온 필자로서는 또 다른 세계의 경험이 필요했음을 우선 고백한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선생은 기초적 해독력이 부실한 터수에 규격화된 부정적 비평 관용구를 마구 휘두르는 것은 늠름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정당화 될 수없는 문화폭력이다"고 일갈했다. <시란 무엇인가, 경험의 시학/ 유종호/민음사(2022) 6-7>

 기초적 시 해독력에서부터 딸리는 필자는 비평까지는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비평의 관용구를 갖다 댈 수도, 그렇다고 만용을 부려 나대로식의 짜맞추기 해석을 할 수도 없다. 다만, 작품이 발표된 후 이어지는 해석의 경기장엔 다양한 선수들이 다양한 유니폼을 입고 뛰어 다니고, 나도 그런 선수들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핑계를 달고 읽어보는 것이다.

 그가 최근 발표한 17편의 시를 일별하면서 온 제일감(第一感)무겁다는 것이다. ‘유리벽을 뚫고 오는 봄이라는 시 제목을 봤을 때, 나는 여느 서정시처럼 들판의 봄을 그려낼 줄 알았다. 우리는 맹춘(孟春)을 기대하는 시에서 찬란한 봄의 환영을 그려내는 시인을 만나고 그의 예언을 읽으며 희망을 품는다. 이게 일반적 대춘시(待春詩)가 독자에게 선사하는’'혜택'일 게다.

 김원욱도 실은 그러할 것 같지만, 그의 시 속에서는 좌절, 아득함 등의 환유를 찾아내게 한다. 시가 궁극적으로 그려내려고 하는 세계는 이승 보다는 저승이다. 필자와 같은 독자는 조금 섬뜩하다. “봄은 기다리지 않는 게 좋다는 역설이 뇌리 속을 소용돌이 치게한다. 그 시 일부를 읽어보자.

 “(...) 면벽에 들어/ 적멸에 이르는 고요한 문밖을 응시하다가 무심코/ 눈길이 머문 제단 위/ 보이지 않는 벽에 처박힌 철새 한마리, 파닥거리는/ 이쪽과 저쪽 사이/ 마지막 몸부림인 듯한 꽃잎이,/ 우두커니 서있는 낯선 풍경이, /시원의 그날처럼/ 견고한 유리벽을 와장창 깨부수고/ 쳐들어올 것만 같은”<유리벽을 뚫고 오는 봄/시인시대(2023 여름)제주작가(2023 여름)>

 김원욱에게 봄은 소생의 전령이 아닌 낯선 풍경이다. 벽에 처박힌 철새 한마리가 된 시인에게 봄은 유리벽을 뚫고 쳐들어 올것은 같은데, 그리하여 구원의 시원을 열어줄 것 같은데, 적멸에 이를 정도의 고요는 이제 끝났는가.

 “고향에 살면서 고향이 그리운 날 섯골새로 간다/까까머리 총총걸음/ 숨죽이며 내달리던 열세 살/뒷덜미를 잡아챌 것만 같은 기운이 서릿발처럼 엉켜서/영문이 모르는 귀신이 흐느낀다고도 하고/ 고랑 구석구석 인골이 무더기로 나 뒹굴었다고도 하는/ 심장만 콩콩뛰던/ 휑한 눈망울 속/ 외눈박이 새가 될까/ 짓궂은 도체비가 될까”<섯골새/문학청춘(2024 봄호)>

 김원욱은 아마도 고향 위미마을의 서쪽 개천인 섯골새를 시의 본향으로 삼은 듯 하다. 이곳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험한 곳이다. 원귀의 혼이 묻어있을 것 같은 바위투성이 개천이다. 열세살 소년 김원욱은 이 개천에서 어쩌면 현재 처절하게 천착하고 있는 이승과 저승을 모두 보고 말았다. 그는 그후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원초적 질문에 매달려 미여지벵뒤에 몸을 의탁을 했을 터이다.

 사족을 부러 붙인다. 올해 봄 별세한 오승철 시인과 김원욱은 막역했던 동갑내기 향우다. 둘의 고향이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로, 오승철은 이곳 올랑캐해안에서 시인의 꿈을 키웠다. 김원욱 시인에게는 그곳은 섯골새였을 것이다. 오승철이 올랑캐에서 한 없는 서정을 돌돌말아 가지고 가서 시를 썼다면, 김원욱은 이 원귀의 개천에서 본 외눈박이 새 아니면 도깨비를 모티브로 삶과 죽음, 즉 이승과 저승에 대한 무속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김원욱 시인을 특별히 보려는 이유다. 다음 시를 필자의 가슴에 음각(陰刻)해두면서.

 “사랑과 이별과 한 끼 양식을 이야기 하던 나는 광막한 블랙홀에서 미지의 시간을 헤아렸네 잔혹한 시간이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는 칠성의 둔덕 같은 문장에서 꿈틀거렸네”<시간을 넘보다/제주작가(2023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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