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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앞만 보고 달린다. 말은 양쪽 눈으로 약 330도까지 볼 수 있지만, 두 눈으로 초점을 맞추어 볼 수 있는 각도는 60도 정도이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뒤쪽까지 볼 수 있다니 고작 20도 각도만을 보는 사람보다 진화된 눈의 소유자다. 깊은 쌍꺼풀에 속눈썹 숱이 풍성한 것은 빛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선글라스를 걸쳐 주어야 하는 사람이 선망할 대상이 아닌가. 사람보다 여덟 배나 큰 눈망울은 속눈썹의 숲으로 드리워져 애잔하고 우수에 젖은 분위기다. 매혹적인 눈빛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말은 조련사들에 의해 길들이는 시간을 견뎌 내야만 하는 운명이다. 낙엽 밟는 소리에도 공포감을 느끼는 말에 접근은 평온한 분위기에서 말에게 협조를 구하는 마음으로 다가가고, 말의 자유의지로 동조할 때까지 기다린다. 강압적으로 장악하려는 행위는 피해야만 한다. 무한히 관대한 마음으로 고요한 평화를 말들에게 허락해야 한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 말 스스로 방향을 잡고 움직이려면 안장 위의 기수가 고삐를 당긴다. 말은 그 순간 통증을 느낀다. 고통이 수반하는 훈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말은 순순히 가라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양쪽 고삐를 동시에 잡아당기면 말은 멈춘다. 재갈은 학대의 도구가 아니고 말과 사람이 한 곳을 지향하기 위한 소통의 방편이다.
입에 재갈은 인간의 세 치 혀에도 필요하지 않은가. 말(言)로써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나, 위선을 하는 혀의 남발, 자신을 부풀리는 혀의 허풍을 제어할지어다. 대답할 때와 침묵할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는 사람의 도리이니 스스로 재갈을 물 일이다.
기수의 구두 뒤축에는 더 속도를 내라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박차를 부착한다. 주인의 박차를 느낀 말은 곁눈질도 하지 않고 달릴 길을 향해서 질주한다. 눈앞의 장애물도 주저하지 않고 돌진해야만 하는 경주마의 운명은 가야만 하는 인생행로와 닮았다.
박차를 가할 때 말은 달릴 길을 달려 골인하지만, 사람은 자기 보폭에 맞게 호흡하지 않으면 화를 부른다. 최선을 다하되 멈출 때를 지체하지 마라. 함부로 박차를 가하다 막차를 타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삶이 우량 유전자와 원하는 만큼의 부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는가. 물릴 수도 없는 시련의 과정을 운명이라고 체념하며 받아들이기엔 버겁기만 하다. 생의 채찍질이 예고도 없이 후려칠 때의 좌절은 터닝을 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행운이다. 한없이 오르고 싶었던 지난날은 꿈일지언정, 과욕을 버리는 걸 깨우쳤으니 다행이지 싶다.
말은 생래적으로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와 부여의 전쟁 중에 잃어버린 고구려 대무신왕의 “거루”라는 말이, 한 달 뒤에 부여의 말 백 필을 이끌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열 충신보다 말 한 필이 보배지 않는가. 말은 떼를 지어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산다. 더불어 살아야 안정감을 느끼고 마주 보며 서로의 뒤쪽이 안전한지 살펴 준다. 야생마가 넓은 초원에서 홀로 남겨졌을 때, 고립을 견디지 못해 그곳을 회피하려 날쌔고 강하게 몸부림치다 끝내는 멸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추측해 본다. 말을 소재로 찍은 사진이나 그림에서도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말이나 무리 지어 있는 말들의 장면은 흔한 일이다.
격식을 갖추고 교류하는 모임에서 이방인이 되어 소외되는 날이 있었다. 그들과 동화되지 못하는 시간은 어수선하였다. 심리적인 적막을 깨트리려 서둘러 빠져나온다. 목 늘어진 헐렁한 면 티셔츠를 입고 소파에 널브러졌을 때의 포장하지 않은 자유로움에 쾌재를 부른다. 그날, 속내를 활짝 열지 않은 이의 마음에 붙들려 뭔가 다르다고 동경하다, 헤프게 수다를 떠는 그녀의 모습에 실망했었다.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짧은 구간 승마 체험은, 초면인 말이 무섭다고 나는 아우성을 쳤다. 등을 내준 말은 침묵이었으므로 점차 익숙해지는 말의 등이 안락하였다. 확신이 없던 길은 더 높고, 멀리까지 열렸다. 차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린들 금속의 기계와 함께일 뿐, 생명체인 말은 지능이 높아 사람과 감정을 교류하는 신성한 동물이다.
말(馬)이 사람처럼 말(言)을 할 수 없어 그 신비로움으로 영원을 살지니, 말의 눈빛에 깊이 잠겨 볼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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